그 때 나는 사랑은 베풀어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깊은 생각과 철학을 나에게 주고 졸업한 초등학교 선생 적 나의 제자, 미정이. 그 아이는 비를 맞으며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분명 찢어진 자기 우산 하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것을 내게 주고 간 것이다. 빗속으로 사라져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은 서럽게도 아름다운 사진 한 컷이었다.
나를 애틋하게 생각했던 그 때 그 제자의 마음, 그런 마음을 나는 누군가에게 베풀어 주어 보았는가. 지금도 제자 같은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정말 갖고 싶다. 몇 십년동안 실천이 따르지 않는 나의 마음. 오늘은 주룩주룩 내리는 봄비 같은 회초리로 피맺히게 후려치고 싶다.
봄비가 내린다. 갑천의 물도 제법 많이 불었다. 오늘 따라 출근길에는 몇 마리의 백로만이 물질을 할 뿐 물오리, 해오라기들은 보이지 않는다.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나의 제자 미정이.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찢어진 파란 우산을 들고 동화처럼 산 아래로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보고 싶다. 어디엔가 살고 있을, 남편만을 기다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 양보만 하고 살고 있을 그 아이가 보고 싶다. 빠듯한 남편 월급을 쪼개고 쪼개면서 이 집 저 집 전세로 살고 있는지 모른다. 부자 남편을 만나 화장 짙은 얼굴, 뚱뚱한 복부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무엇도 그 애에게는 충분한 행복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것은 매 한가지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도 돈이 부족하다해서 결코 불행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그 때 그 아이처럼 맑은 영혼을 죽을 때까지 갖고 사는 것, 그것이 바르게 사는 것은 아닐까. 지상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기 마련이고 바다에는 언제나 파도가 치기 마련이다.
쓴맛, 단맛, 매운 맛, 짠 맛 다 보았을, 누군가를 진정 사랑할 수 있는 나이, 그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지금은 그 때 그만한 아이를 갖고 있을 나이 40이 넘었다. 내가 마지막 초등학교에 재직했던 그 학교는 폐교 되었고 그 애의 산집도 없어졌다. 몇 번을 찾았지만 그 때마다 공교롭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마도 지지리도 못살았던 그 때 그 아이가 거기에 두고 간 고향의 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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