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마음의 담장을 허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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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마음의 담장을 허물자

  • 승인 2005-03-26 00:00
  • 진동규 유성구청장진동규 유성구청장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점심 대용으로 아랫목에 덮어놓은 삶은 고구마를 한입 물고 두어 개는 왼쪽주머니에 넣고 오른쪽 주머니엔 구슬을 담아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곳은 안채와 사랑채가 있고 널찍한 마당을 갖춘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다른 집과는 달리 그 집엔 대문이 없었다. 대문이 없으니 담장도 없었고 동네아이들이 내 집처럼 드나들며 놀던 그곳은 동네에서는 유일한 아이들만의 놀이마당이었다.

남자애들은 구슬치기를 하고 여자애들은 사방치기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한 동생들은 햇볕이 따스하게 들던 마루에 걸터앉아 형들의 놀이구경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춥고도 긴 겨울을 그렇게 그곳에서 보냈다.

세월의 흐름 속에 개발의 바람은 불어오고 택지조성사업과 함께 많은 집이 헐리고 새로 지어졌다. 그 와중에 기와집이었던 그 집과 놀이마당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지금은 사람 키 높이만한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러싸인 2,3층집이 여러 채가 들어서서 어릴 적의 일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요즘 유성구청에서는 담장을 허무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랬더니 주변에서 멀쩡한 담장을 왜 허무느냐, 담장을 허물면 도난 위험성도 많고 밤이면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 자칫 우범지역이 되지 않겠느냐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어릴 적에 놀던 그 집이 생각이 난다.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었던 그 집에 간밤에 양상군자가 다녀갔다는 얘기는 내가 유학차 고향을 떠날 때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도리어 담장을 없애면 안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어 더 안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담장보다도 마음속에 있는 담장이라고 생각된다.
잠깐 담배 한 갑을 사러갈 때도 대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가야만 되는 불신의 담장들은 국민소득은 늘었더라도 그 옛날의 배고픈 시절보다도 점점 더 높아져서 이제는 교도소의 담장만큼 되어버린 게 오늘날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로인한 사회적 갈등, 정치적 갈등, 종교적 갈등, 국가간의 갈등이 빚어지고 소모적인 싸움과 걷잡을 수 없는 희생만이 생겨나고 있다.

이제 5월이면 구청 담장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언제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아담한 공원이 만들어진다.
이는 단순히 담장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과 주민들 사이에 오랜 세월동안 자리했던 마음의 벽이 사라지고 비로소 “Let’s Go Together!”의 구정구호처럼 모두가 한마음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에 적지 않은 의미를 두고 싶다.

구에서는 도시녹화사업의 일환으로 가정집담장 허물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멀지 않아 마음의 문이 열리면 오랜 세월동안 잊혀졌던 이웃과 대화의 꽃이 피고 어린시절 동네 애들이 내 집처럼 드나들며 놀던 담장 없는 놀이마당에서의 따뜻한 정겨움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그런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담장 하나 허문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어지지는 않겠지만 반목과 질시의 담장들을 하나 씩 둘 씩 거두어버리고 그 자리에 배려와 용서의 샘을 만들고 싶다. 그 샘에서 만들어진 사랑의 바이러스가 온 세상으로 번진다면 정녕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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