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좀 풀렸다고 하지만 예년과 달리 도심에 나가도 별 흥을 느낄 수 없다. 얼마 전 경총이 100대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한 경기전망 조사에서 ‘현재의 경기침체 상황이 3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응답이 40%에 육박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감내도 목까지 차오를 정도로 힘겨운데 경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니 서민들로서는 긴 한숨이 나올만 하다.
지난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국정과제로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선포하고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 경제성장 및 사회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하고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신설했다. 이것은 과학기술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최선의 대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과학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당장 경제회복에 가시적인 효과를 줄 수는 없더라도 국민들에게 건강하고 잘 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무형자산이다. 전세계 어떤 실험실을 가도 정도와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대동소이한 기기와 재료를 이용한다. 다만 다른 것은 그 곳에서 실험하고 연구하는 과학자와 그들의 머리다. 무형자산은 흔히 ‘다락속에 잠자고 있는 렘브란트의 그림’으로 비유된다. 이 그림의 가치를 인식하고 적절하게 활용할 때만 빛을 볼 수 있다.
한편, 연구자들도 최근 연구동향을 미처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그 만큼 국가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때문에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열심히 연구만 하면 된다는 기존의 경직된 사고를 벗어나 신속하고 유연하게 경쟁에 대처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전략적 제휴라는 ‘적과의 동침’이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다.
최근 전략적 제휴와 관련된 두 가지 사례가 눈길을 끈다. 하나는 대기업인 LG전자와 소규모 야채전문매장인 ‘총각네 야채가게’의 협력제휴이다. 두 기업은 주 고객이 주부라는 공통점을 활용해 마케팅 노하우를 공유하기로 했다. 또 하나는 삼성전자와 소니가 포괄적인 크로스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미 독자적으로도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해온 두 회사의 동맹은 글로벌시장에서 시장판도를 새롭게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19개의 이공계 정부출연연구소가 있다. 이들은 지난 70년대부터 서로 특화된 전문분야에서 국가적인 과학기술 개발을 선도함으로써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그러나 전문화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전문화된 기술간 융합에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실적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많이 늦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시기다. 이제부터라도 연구소간 벽을 허물고 협력하자.
기술경쟁이라는 냉혹한 정글 속에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타잔이 돼야 한다. 타잔이 제인을 통해 서로 다른 문명과 문화를 경험했듯이 우리 출연연구소들도 서로 문화와 전문지식을 교류해 연구소 다락방에 잠자고 있는 렘브란트의 그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자.
밖으로 나온 렘브란트의 그림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빛과 소금이 되고, 전세계 다른 나라 과학자들이 생각지 못한 우리만의 독창적인 원천기술을 개발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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