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봄이 오는 속도가 시속 800m라고 주장한다는 말을 방송에서 들은 일이 있다. 봄 꽃이 남부에서 피어 서울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20여일이므로 하루 약 20km를 북상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더 정확히 계산하여 하루에 22km라고 정정하기도 한다는데, 어떤 값이든 시속 1km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봄을 처녀, 새색시에 비유하는 일이 곧잘 있는데 수줍음 많은 새색시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이라면 아마도 시속 1km 남짓일 것으로 생각하니, 이런 시적인 분위기의 표현들이 상당히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 셈이다.
1년의 시작인 1월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그레고리력이다. 전통적으로 사용하여 왔던 음력과 대체로 한달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겨울에 시작된다. 이때부터를 새해라고 한다.
그러나 1년의 시작이라고 하는 1월이 그리 대표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겨울이 시작 되는 것도 아니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길어지는 동지도 아니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어지는 하지도 아니고, 그저 겨울의 중간일 뿐이다. 그에 반해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을 전후로 해서 새해를 시작하는 것은 꽤나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새로운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니 말이다.
겨울은 춥고 외롭고 혹독한 계절이다. 그 겨울 다음에 봄을 배치해둔 자연의 순환은 쓰러짐과 일어섬의 이치를 은연중에 설명하고 있다. 겨울 다음에 봄을 배치한 자연의 순환은 쓰러짐과 일어섬이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하나임을 일깨워준다.
지난 겨울의 퇴락과 쓰러짐이 없었다면 지금 느끼는 신생의 기쁨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겨울의 실패와 좌절이 없었다면 다시 시작해 보고자 하는 이 굳센 의지도 없었을 것이다.
봄이 오는 속도와 기척은 빠르지도 요란하지도 않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봄의 기척을 사람들이 미처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반가운 손님으로 여겨지지만 봄은 부지런한 걸음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벌써 제주에는 유채꽃이 한창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어느새 봄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것이다.
인생뿐만 아니라 무언가의 시작을 봄으로 비유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본능적으로 겨울보다는 봄이 시작이라는 생각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실제로 이 시기를 새해의 시작으로 여기는 문화권이 많았고, 지금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이 새해의 처음이든 아니든 봄은 우리에게 봄으로서 봄다운 생각을 갖게 한다.
희망적이고, 나른하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게 하는 약간의 여유로움을 생각하게 한다. 이봄에 마음만은 조금은 더 여유롭게 봄의 속도를 즐길 필요가 있겠다. 새색시의 걸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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