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예가 ‘행주치마’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행주치마’가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낱말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행주산성에서 왜군과 싸울 적에 여인들이 돌을 담아 나르던 앞치마가 행주치마의 어원이라고 태연히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벌써 행주치마라는 단어가 있었고, 그 뜻도 절에서 ‘행자’들이 일할 때 쓰던 것이었다. 이렇게 ‘행자’와 ‘행주’가 소리가 비슷하다 보니까 언중은 쉽사리 행주산성을 끌어다 붙여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며냈다.
그런데 호사가들은 이따금 ‘목동’에 대해서 바로 그런 주장을 편다. 곧 그들은 ‘목동’이 본래부터 무엇을 기르거나 가르치는 마을이었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그 이름대로 사목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목에 힘을 준다. 아닌게아니라 목동엔 옛날부터 수도원이 들어섰고 성당이 세워졌으며 한참 뒤엔 수녀원까지 생겨났으니 재미있는 일이긴 하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 인재를 양성하는 동산인 목원대학교가 그곳에 버티고 있었으니 얘기에 더 큰 힘이 실렸다.
그러나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목동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 말이 아니다. 그 동네에 큰 연못이 있어 그냥 ‘못골’이라 불렀을 따름이다. 그런데 ‘못골’을 한자어로 옮길 때 ‘못’을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한자가 없어 발음이 비슷한 ‘목’으로 바꾸다 보니 지금의 ‘목동’이 태어난 것이다.
이런 일에서 단연 으뜸 가는 것은 ‘버드내’이다. 많은 이들은 ‘버드내’를 ‘양 옆에 버드나무가 늘어 서 있는 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하천을 ‘유천’ 또는 ‘유등천’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후대 사람들이 그렇게 지은 것일 뿐 본시는 버드나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버드내’는 원래 ‘벌말’과 ‘들말’을 지나 흐르는 내일 뿐이었다. ‘벌들내’가 발음하기 쉬운 ‘버드내’로 탈바꿈하면서 소리가 비슷하다는 단 한 가지 연유에서 뜻까지 바뀌고 말았다. 가녀리게만 보이는 ‘버들’이 ‘벌판’과 ‘들판’의 ‘벌들’을 세차게 몰아내고 자리를 꿰찬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