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리나라에 와서, 동티모르의 공용문자로 한글을 한 번 검토해 보겠다는 발언을 했던 것이다.
동티모르에는 ‘떼뚬’이라는 고유어가 있는데 오랜 기간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의 식민지 생활을 거치는 사이에, 이 말을 기록할 문자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포르투갈을 잊기 위해 인도네시아 문자를 공용문자로 했다가 다시 포르투갈 문자로 기록하게 되는 난처함에 빠졌고, 궁여지책으로 우리의 한글 까지도 자국의 공용문자로 검토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논의는 그 뒤 흐지부지 되었지만, 우리처럼 모국어에 매달려 일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굉장한 흥밋 거리였던 것이 사실이다. 드디어 장 하게도, 자동차 핸드폰 등을 수출하는 나라에서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마저 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렀단 말인가. 우리야 초등학교 이래 우리의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으면서 자랐으므로, 금강산이 세계제일이라는 것처럼 어느 정도는 ‘스스로의 부추김’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얼마쯤은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IT로 대변되는 ‘정보’와 ‘기술’의 시대인 요즘, 우리의 이웃인 일본이나 중국이 인터넷의 생명인 ‘속도전쟁’에서 우리 한글보다 얼마나 불리한지는 한 눈에 금방 드러나고 있다. 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작가 펄벅 여사가 일찍이 한글을 ‘독창성 뿐만이 아니라 기호 배합 등 효율 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박수를 쳐준 것이나, 역시 미국의 언어학자인 레어드 다이어먼드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이유는 한글의 우수성에 있음’을 지적한 것도 기분 좋은 일중의 하나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부터 우리 말과 글의 순정성을 어떻게 유지 보존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고민이다. 국제화시대에 우리 말과 우리 글로만 밀고 가자는, 폐쇄적인 주장을 펼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영어가 우리 말 속에 사정없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다가는, 우리 말과 글이 ‘혼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자동차를 고칠 때 굳이 순정품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차의 수명을 더 안전하고 오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가.
양반의 고장이라는 우리 충청권의 어느 도시를 가나, 젊은이들이 입고 있는 옷에는 거의 다 알파벳이 인쇄되어 있다. 이제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이런 현상은 더 극심해질 것이다. 특이하게도 작년에, 미국의 세계적인 팝스타인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한글이 인쇄된 원피스를 입고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연예기획자들도 이런 데에 창안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 고유의 말과 글을 지키고 알려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좀 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이런 점에서 공영방송인 KBS가 입사시험의 사전과정으로 치르고 있는 ‘한국어능력시험’이나, 재단법인 한국언어문화연구원에서 올해로 13회째 시행하는 ‘국어능력인증시험’등은 아주 바람직한 제도라고 생각된다. 이런 취지를 살려 공무원이나 각 언론기관 또는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도 잘 활용해 나간다면, 우리 젊은이들이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함을 평소 더욱 살갑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축구라면 온 나라가 펄펄 끓는다는 남미 대륙, 위로는 멕시코에서부터 칠레 우루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이 자기네 것을 잃어버리고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말과 글로 외치고 열광하는 현상을 보면, 저절로 이런저런 생각을 머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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