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것은 남해 해수욕장에 심겨진 300여년전의 방풍림이다. 선조중에 누군가가 후손의 웰빙을 위하여 구슬땀을 흘리며 심었을 나무를 바라보면서 생각이 깊었다. 자신을 위해서만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를 위하여 정성을 쏟은 고상한 정신이 나무마다 서려있었다.
겨울바다를 마주보고 일렬횡대로 자리한 나무들은 파종자의 고매한 인격과 비전에 의하여 더욱 값지게 자리잡았다. 후손에게 복을 물려주는 선조의 넉넉함이 얼마나 황홀한 것인가! 올 여름에도 수많은 해수즐김이들이 전국각지에서 몰려와 저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아래에서 휴식과 재충전의 단란한 시간을 누리겠지.
광양에서는 시뻘건 쇳덩이가 어떻게 부가가치가 높은 철판 코일로 변하는지를 온몸으로 만끽하였다. 안내도우미의 말에 따르면 하루 순수익이 60억원이라 했다. 효자산업의 전형이리라. 돈도 돈이지만, 창조주께서 내려주신 자원을 극대화하여 제철소를 세운 철인(鐵人)들의 기백과 앞서 보는 힘이 놀라울 뿐이었다.
나무를 심든, 광석을 녹이는 용광로를 지어내었든 그것은 창조성의 또 다른 표현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것은 물론, 오늘의 경제에 탄력을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늘 높이 솟아있는 고로(高爐) 만큼이나, 보는 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광양의 추억을 어찌 할 것인가?
애양원은 슬픔의 역사와 아름다움이 함께 배 있는 곳이었다. 한센씨병으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들려준 빛의 출발점인 때문이다.
겨레로부터 심지어 가족과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오직 영혼사랑의 일념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의 제단에 봉헌한 여러 선교사들과 손양원목사의 일대기를 찬찬히 보고, 체험하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을 느꼈다. 손양원 목사님은 그 별명이 “사랑의 원자탄”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의 존재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원자탄이 아니었다. 사람의 존재가치를 고양하고, 생명존중의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랑의 사도였기에 역설적인 별명이 자연스레 붙여졌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뿌리고 사는 존재이다. 후손을 위하여 이름 모를 해변에 작은 씨 하나를 희망과 함께 뿌리든지, 경제 입국을 꿈꾸면서 미래에 대한 확신을 담아 용광로를 설치하든지, 버려진 인생을 위하여 상처를 감싸안아 영혼에 사랑의 씨를 뿌린다.
후손을 위하여 희망의 씨를 뿌리는 자를 애족인(愛族人)이라 한다.
나라를 위하여 땀과 피를 뿌리는 자를 애국자(愛國者)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이웃을 위한 사랑의 씨를 뿌리는 자를 신앙인(信仰人) 곧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 부른다. 이들은 영원한 세계를 위하여 준비하는 자들이다.
이제 봄이다. 이 거역할 수 없는 감동의 때를 살려내기 위해서 무엇을 뿌릴는지 주의할 일이다. 뿌리는 자의 자유가 있듯, 추수의 필연도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러한 파종과 추수의 법칙을 오래전부터 알려주었다.
누가 이 찬란한 봄을 위하여 지혜롭게 파종할 것인가? 누가 인생나그네길의 봄 언덕에 의미와 가치라고 하는 씨 한 톨을 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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