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수 한남대 종합서비스센터 소장 |
옛적에 우암선생께서 음산이라하여 쳐다보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적은 있으나, 지금은 사통팔달로 길이 뚫리고 고압선이 얽히고 설키고, 곳곳마다 깎이고 뜯기고 헐리고, 효율과 실용에 의해 어느 곳에나 말뚝이 문명처럼 박혔으니 어디 산의 혈이 제대로 통해야 음양의 이치를 논하지, 한낱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유물이나 미신이라 여길까 봐 아예 무시하고 산을 대하나, 허나 아니 들음만 못함은 인간사 아니겠는가?
원래 보문(普門)은 불가에서 부처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나 보문산(寶文山)은 누가 어떻게 지었는지 모르지만 불가 보다는 유가적 냄새가 더 풍긴다. 우리나라 사람은 이름의 상징성을 중요히 여기기에 이런저런 얘기도 있으련만 귀담아 듣지 못했으니 참 안타깝다.
대전8경이라 하여 푸르른 녹음을 자랑하고 있으나 솔직히 이 겨울엔 변변한 숲하나 볼 수 없다. 어디 그뿐이랴. 보문사지 절터엔 이끼낀 기왓장 하나, 보문산성엔 백제의 애잔한 역사 한 조각, 시루봉엔 호랑이가 포효하며 넘나들던 발자국 하나, 보운대라 지칭하는 전망대엔 산 이름에 걸맞지 않게 시비 하나 없는, 주렁주렁 전설은 커녕, 산이 주는 위압감 마저 없다.
그저 작은 산사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와 골짝골짝에 자리 잡은 휴게소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경음악 뽕짝 가락만 발걸음을 재촉한다. 뉘라 따라오는 이 없는데 해는 서산에 머물고, 그 많던 비둘기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비둘기집 밑에 그나마 유일하게 세워놓은 ‘비둘기’라는 시비엔 뭐가 못마땅했는지 비둘기 배설물이 치익 갈겨져 있다.
부벽루에 오른 김생원처럼 현판이라도 뜯어내고 시 한수를 새롭게 적어볼 심량으로 헤집고 다녀보아도 똑같은 시민헌장만 두 개 전망대를 공덕비처럼 버티고 있고 풍광은 움츠려 있다. 그 많은 문객들은, 애향심에 목매이며 지연, 학연 따지며 핏대 올리던 인재들은 그래, 시 한수, 유행가 하나 만들지 않았단 말인가?
수양산이 강동 팔십리를 그림자로 드리웠다던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한밭은 태전(太田)이란 이름을 풍수에 능하던 일제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제땅인냥 점 하나를 떼어버리고 맥을 끊겠다는 야심으로 대전(大田)이라 부르라 했다던가? 진정 아는 것이 병이고 모르는게 약인가? 산자락은 겉으로는 그저 평화뿐이다.
누가 그까짓 것도 산행이냐고 하겠지만 수많은 민초들의 땀이 스며 있고, 역사의 부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변함없이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 잡고 있는 가족같은 산을 무엇으로 말하랴. 변한게 있다면 언덕길에 오늘도 좌판 펼쳐놓고 사주관상 봐주는 이만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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