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새치 인생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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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초대석]새치 인생의 지혜

  • 승인 2005-02-15 00:00
  • 도완석 성남고등학교장·연극평론가도완석 성남고등학교장·연극평론가
문득문득 흐르는 세월을 실감한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엊그저께 장가간 대학동창 녀석 집들이도 안했는데 녀석으로부터 딸네미 시집간다고 청첩장을 보내오질 않나 고교시절 담임선생님댁에 놀러갈 때면 사모님이 우리 눈을 피해 웃방에서 젖을 먹이시던 그 아가가 벌써 애 엄마가 되어 우릴 놀래키질 않나, 그렇게 곱상하던 열 입곱살의 연극배우 선희씨가 벌써 고등학교 학부모가 되어 내게 입시상담을 해오는 것을 보면 드라마 ‘봄날’처럼 우리네 모두가 기억상실 속에서 가는 세월을 잊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내 젊은 시절에 나를 무척 아껴주셨던 대학은사 한 분은 부총리까지 지내신 덕망 높으신 어른이신데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나를 다른 분에게 소개를 해주실 때 언제 이 분이 내 가정생활과 나에 대해서 이토록 자세히 알고 계셨던가 할 정도로 자세히 나를 친구 분에게 소개해주신 적이 있었다. 그날 이 분으로부터 크게 감명을 받고 교훈을 얻었던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누구를 만나든지 그에 대한 나의 자세는 최고의 친구, 최고의 관심, 최고의 사랑을 가지고 대하라는 것이었다. 비록 스쳐 지나가는 나의 향기와 나의 그림자를 그가 기억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날 선생님은 이것이 나의 생활신조요, 어쩌면 이것이 너의 장차 성공의 비결이 될 것이라는 무언의 교훈을 어린 내게 입력시켜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소중한 교훈을 나는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다. 성경말씀에도 “적은 것에 충성하라”는 말씀이 있듯이 적은 일에, 짧은 순간에 베푼 정성과 호의가 훗날 큰 도움으로 되돌아오는 역사를 우리는 명작, 명화에서 또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가끔씩 경험해보는 일이 아니던가!

나는 이 다가오는 봄날을 따뜻하게 맞이할 자신이 없다. 소중한 순간들을 경(輕)히 여기고 먼 미래의 꿈만을 목적하며 순간의 만남을 잊고 살아가는 내 시간들이 어찌 타인의 눈에, 그 가슴에 따스함을 전달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제 곧 새학기가 시작되면 수백명의 신입생들을 만나게 될테고 이제 오월이면 전국연극제가 이곳 대전에서 개최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텐데 이런 내 생활자세를 가지고서는 좋은 인간으로서의 평은 ‘영 아니올시다’일 것이다.

따스한 봄날이 오기 전 우리의 옷장정리, 책장정리가 필요하듯이 내 인생의 생활습관을 먼저 정리하는 일이 시급함을 느낀 나에게 하루 24시간이 절대 무료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도 ‘백발인생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니지! 아직은 50대로서 검정머리에 새치가 늘어나는‘새치 인생’이 스스로 자각한 ‘새치인생의 지혜’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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