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우칼럼]비석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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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우칼럼]비석놀이

  • 승인 2005-02-14 00:00
  • 칼럼니스트. 前 국장칼럼니스트. 前 국장
경쟁력이나 총 생산성을 개털과 봉으로 즐기는 사람들. 이 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 출세한 사람들이 그 장본인이다. 출세란 무엇인가.

부모들과 집안 어른들 그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고 부러워하는 출세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출세란 어떤 수준에 도달한 인격도 아니요 어떤 분야에서 이룩한 전문성이나 탁월성도 아니다. 그것은 어떤 지위와 힘이 있는 자리, 청탁을 주고받는 자리, 거기에서 부수입이 생기는 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정(市井)의 인물평도 서울이냐 지방이냐 어느 직장에 다니느냐 직급이 어느 정도냐 부하가 몇이나 되느냐를 따진다. 인재들은 모두들 알아주는 자리로 기어오르기 마련이다. 그 꼭대기에 부패특권이 트림을 하고 서 있다.

출세란 하늘을 가리고 치부를 하는데도 금의환향으로 부러움을 사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런 집 문턱이 닳고 그 집 애경사에 문하객이 몰려든다. 원인과 결과를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고는 뭐가 먼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사람 사는 동네 다 어디나 그런 것 같지만 선진국에 그런 출세 없다.

부패한 귀족사회는 벌써 무너졌다. 누구나 열심히 일해서 돈 번다. 거저 버는 놈은 없다.
또 이웃이 어디 다니느냐 계급은 뭐고 월급은 얼마고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거기에도 월급은 뻔한데 잘살고 우대 받는 놈 있으면 왜 배 아프지 않겠는가. 이런 놈들이 득실거렸다면 선진국 되었겠는가. 인재들이 공직자로 또 서울로 몰렸을 것이니 말이다.

통치자들이 턱짓과 눈짓만으로 명예롭게 치부하는 방법을 마련하고 인재들을 줄기차게 그 정상으로 수도로 몰리게 했다면 절묘한 통치술 아닌가. 통치자가 수재들을 꽈 먹고 수재들이 백성을 뜯어먹는다. 모든 수재들이 중앙으로 몰리고 나머지 것들이 중앙을 우러른다. 중앙에서 뽑힌 자들이 뽐내며 지방으로 내려와 위전을 들먹이며 겁을 준다.

지방백성은 비실 거리기 바쁘다. 그러니 자식을 잘 키워 서울로 보내야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빌어먹어도 서울로 가야 한다. 거기에 끼어들지 못한 녀석들과 그 부모는 한숨이 땅에 꺼진다. 하나 사실은 속는 것이다. 그들의 자랑감인 수재들도 마찬가지다. 어사화 앵삼을 놓고 잔치를 벌이는 가문이나 서원 향교까지도 들러리나 바람잡이가 된 셈이다.

출세자들이 부귀영화를 우려냈는데도 그걸 모르는 백성들은 부러워하며 다짐한다. 나도 한번 그 자리를 차지해 보리라 대를 물려가면서라도 시켜보리라. 누가 진정 백성을 위한단 말인가 하며 감히 주먹을 불끈 쥐어 보겠는가. 팔도에 깔려 있는 자천 타천의 준재들이 너나없이 서울을 쳐다보면서 침을 흘릴 것이 뻔하다.

선거된(뽑힌) 사람은 공인수재로서의 희열을 만끽할뿐 아니라 나리 영감이 되어 권한과 권한을 교환하거나 권한과 부를 교환할 수 있는 특권을 향유한다. 낙선한 사람은 실의와 방탕에 빠지거나 특권에 붙어먹고 사는 길을 택한다. 줄잡아 갑오경장 때까지 1000년 가까이 이랬으니 그 폐단이 어떠했겠는가.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게 있는가.

차라리 귀족제였다면 산업혁명이나 프랑스 혁명같이 평민수재들에 의하여 진작 타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천민을 빼고 누구나 특권진입의 기회를 주었으니 어중이떠중이 대가리 성냥으로 한양 길을 재촉했다. 어느 수재가 빠져나와 탐관오리에 대들겠는가.

젊은이의 군은 그들의 선배들이 해먹은 출세비 송덕비를 밟고 한양으로 달려가 또 다른 선배가 되는 것이다. 선배들의 공덕비 옆에 자신들의 공덕비를 추가하는 일이다. 전국적으로 한양을 향해 촘촘히 서있는 안내판을 따라 지도 없이도 축지법 안 쓰고도 단번에 서울로 달려갈 수 있는 나라가 위대한 나라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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