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성 교육문화부장 |
이 ‘옥중 수양록’ 기록에 따르면 그가 제 3군단장으로 복무하던 지난 1972년 말 자신의 부대를 방문하는 박 대통령을 시해하려 하나 정리(情理) 때문에 포기하고 만다.
이듬해 유정회 국회의원을 거쳐 중앙정보부 차장으로 발령이 난 그는 당시 민청학련 사건 등 여러 사건을 접하면서 양심과 직책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한다. 그가 건설부장관으로 사령장을 받던 1974년 9월 14일 청와대 접견실에서도 그는 거사를 결행하려 하지만 또다시 접고 말았으며 이듬해 2월 대통령의 건설부 초도순시 때 역시 거사를 실행하려 했지만 이마저 포기한다.
결국 10·26사태로 그는 자신의 거사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이 충격적인 장면이 처음 공개된 것도 불과 2년 전인 지난 2003년 10월이었다. 10·26사태가 발생한지 24년 만에 핏자국으로 얼룩진 궁정동 안가의 모습이 한 방송사 TV화면을 통해 국민들에게 그 실체를 드러냈다.
그로부터 만 2년이 되기도 전에 이 충격적인 장면들이 고스란히 재연된 ‘그때 그 사람들’은 설날 극장가에 내걸린 것이다. 코믹연기의 대표 주자가 돼버린 백윤식이 김재규로 등장하는 블랙코미디로 희화화된 채 말이다.
김재규를 둘러싸고 후세인들의 평가는 ‘대역죄인론’ 또는 ‘의사론’ 등으로 엇갈린다.
당시 서슬 시퍼런 신군부의 군법회의는 대위 출신인 차지철 경호실장과의 악감정 등 갖가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반면 그의 변론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 등은 ‘유신독재를 종식시키고 서울의 봄을 가능케 한 민주화 운동의 핵심 인물’로 평가했다.
그러나 어떠한 평가가 옳은지는 쉽게 단정짓기 어렵다. 게다가 김재규가 한 때 고민해왔던 민청학련 사건의 주인공들, 즉 이해찬, 정찬용, 이강철, 김근태, 유인태 등의 상당수가 현 정부 주요 인사로 포진해있는 현 시점에서의 어떤 평가 또는 역사 바로잡기는 그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때문에 30여 년도 채 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집권자들의 전직 대통령 과오 파헤치기식 역사 까집기(?)는 자칫 오류로 흐를 위험성마저 높기 마련이다. 설날 연휴에 필자가 가족과 함께 극장을 빠져나오며 ‘그때 그 사람들’의 장면 장면들을 되새김질 했지만 남는 것은 희화화 된 김재규의 모습과 그저 붉은 피로 뒤엉킨 궁정동 안가의 모습 뿐 이었다.
설날을 겨냥한 영화에까지 섣부른 역사 까집기로 얼룩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뒷맛이 영 씁쓸했다. 어느 영화 전문 사이트에 올려진 한 네티즌의 영화평 가운데 ‘임상수, 제 2의 명계남을 노리나’ 라는 비아냥거림이 무심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젠 국민들이 설날 가족과 함께 즐기는 영화에 까지 정치적 피비린내를 풍겨야 하는 것인지.
임감독, 정권의 나팔수처럼 그런 피 냄새 나는 영화 말고, 정말이지 내년 설 명절에는 온 가족이 웃고 감동 받을 수 있는 따뜻한 영화 한편 보게 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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