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아침]60년 만에 맞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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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60년 만에 맞는 설

  • 승인 2005-02-07 01:55
  • 한근수 유성문화원장한근수 유성문화원장
한근수 유성문화원장 전국문화원연합회 대전지회장


양력으로 설을 지내던 때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단발령을 내려 머리를 자르게 하고 한글 이름을 일본 이름으로 바꾸게 하고 명절인 설을 양력으로 지내라고 했었다.

그 때 사람들은 마지못해 그것을 하면서도 얄궂은 일들에 대해 개운하지 못한 마음이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정서상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민족의 정서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다른 나라에는 없는 그 무엇일 수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못 느끼고 우리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민족의 정서에는 우리의 혼이 살아 숨쉬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민족의 혼은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정신이다. 찬 겨울 새벽에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천지신명에게 집 떠난 지아비와 아들이 꼭 돌아오게 해 달라고 두 손 모아 빌어도 굳건하게 살아있던 믿음, 한 집안을 위해 가족을 위해 내 한 몸 기꺼이 희생하면서도 기쁠 수 있는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진정한 혼이었을 것이다.

광복 60주년이 되는 올해 일제 강점기 때 강제 동원 된 사람들의 진상을 조사한다고 한다. 그것도 사실은 한일협정문서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어쩌면 어쩔 수 없이 조사에 착수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개인적인 보상 등의 문제는 난관을 예상하고 있지만 그 분들의 잃어버린 60년이 세상의 빛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의미를 두고 싶다.

그 보다 앞서 정신대할머니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왔지만 돌아가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져서 안타까운데 일제강점기 때 강제 동원된 사람들에 대한 진상구명은 보다 철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협상의 기회에 스스로 우리 아버지와 아들들에 대한 권리를 축소하고 대수롭지 않게 처리한 잘못을 인정하고 또 협상 자체에 대해서 은폐했던 오류를 다시는 범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동원 된 113만 명 중 과연 몇 분이나 살아계실지 모르지만 탄광에서, 수력 발전소에서, 철도에서 군사공장에서 그리고 전장에서 그들이 버려야했던 것은 젊음 뿐 만 아니라 시퍼렇게 살아있었던 우리의 혼을 버려야했기에 그들의 혼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

이제는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이가 들어 도무지 스스로 싸울 힘조차 없는 어르신들이 된 이 분들의 진상을 비록 6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지만 남김 없이 가려내어 한, 일 양국 정부가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그 분들의 정신을 다시 살려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양력설을 권장하던 때가 있었다. 신년 연휴를 길게 하고 음력 설 연휴를 줄였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음력으로 설을 쇠었다. 무어라 딱 꼬집을 순 없지만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정신이 살아있는 것이 음력으로 맞이하는 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설이다.

설은 첫 날이라는 의미이다. 낯설다는 말의 근원인 ‘설’의 어원에서 나왔다. 새해에 대한 낯설음,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이라는 말이다.

또 삼가다는 뜻의 옛 말인 ‘섧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시작하는 날,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만큼 설이라는 명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설날은 함께 모이고 헤어졌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날이다.

부모형제 일가친척이 서로 얼굴을 보고 안부를 묻는 날도 설이다. 그래서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난다. 하루 종일을 좁은 차 안에서 지내야하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날도 이 날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만남의 기쁨이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에 다른 마음이 들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번 설에는 60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정신적으로 고향에 돌아오게 된 그 분들이 진정한 설을 지낼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마음을 전해드리자. 그리하여 대한민국 모두가 복을 받고 복을 짓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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