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바쁘다고 한다. 물론 소득이 100달러 생활에서 1만달러 시대를 누리고 있으니 바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미래는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을 가슴속으로 보기 위한 관심과 실천이 있어야겠다. 오늘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고 세계는 경쟁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100달러의 시대에는 분명히 안방과 아랫목이 살아있었고 가정에는 어른의 말씀이 가족생활의 분명한 길이요, 선의 역할을 해왔다. 오늘은 어떠한가? 어른의 말씀은 이제 대문, 현관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처한 실정이며 이미 나갔다고 할 수 있을 지경이 되었다.
변화의 시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주장들을 하고 있음을 본다. 물론 많은 변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서울에서 미국으로 12~13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지만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비행기를 미국에서 연구 개발하는데 성공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앞으로 50년 이내에는 미국을 능가할 수 있는 나라는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세계 일등국가인 미국에서 10년 전부터 사회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있다. ‘미국인이여 정신차리자, 미국인이여 가정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구체적 실천으로 양로원에 가 계신 노부모님을 가정으로 모셔가는 것이다. 이 길이 우리의 살길이며 미래가 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20세기를 살아오면서 실현과 실습을 거의 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실험 실습결과로는 나와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분별력인 것이다. 미국은 선택을 잘 한 것이라고 인정해야한다.
오늘 우리사회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장·노년 모두가 걱정의 말씀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 대책은 어른들에게 있음을 인정해야한다. 그래야만 문제의 해결방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1900년대 즉, 100년의 생활이 우리 모두에게는 중요한 기간이었다. 식민통치, 6·25전쟁이 우리들에게 안겨준 상처는 아직도 깊이 파인 웅덩이처럼 남아있다. 법과 질서·상식과 이치·합리보다는 기회주의가, 적당주의가 아부와 눈치보다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처를 잘 다듬고 새 기운을 만드는 것이 정치력인 것인데 50여년간 정치력이 살아있는 구실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다 의식주가 조금씩 향상되다보니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쏟아지다보니 쉽고 편하게 의식이 급격히 팽배되는 사회현상을 만들고 말았다. 가정은 어른 중심에서 어린아이 중심으로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가정 안에서 가족간의 살아있는 대화가 거의 없는 지경이고 각자 화면 앞에서 지내고 있다. 겸손과 감사와 보답, 국가에 대하는 애국심, 충성심, 효자, 효부, 효행심 이제 더 늦기 이전에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대책을 만들고 실천해야한다.
본시 인간은 만남과 협력의 산물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버지, 어머니의 만남에 의한 산물이지 않는가? 우리의 육신에는 고통과 고난의 멍에를 휘어 감고 어머니 몸속에서 이 땅에 올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쉽고 편하게만 몇 십년간 달려 나가다보니 어떠한 현상 앞에 처하고 있는가? 모두가 말한대로 산업화, 정보화가 다 있는 것은 아닌데 처처에서 걱정의 소재가 일고 있다. 너무 성급하다 요구하는 측도, 급하게 들어주는 정치권이나 당국도 똑같이 급한 행보를 하고 있다.
지난날 어머니의 절구질이 생각난다. 절구질을 하고 퍼서 채에 거르고 다시 절구질을 하는 과정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부족하다. 특히 참여정부에 절구질은 꼭 필요하게 될 것이다. 국가가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도 성장을 유지하고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도의(道義)’는 생명선인 것이다.
도의를 가볍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있을까? 유지할 수 있을까? 그 답은 교과서 문자로만 배운 것이다. 우리는 통치권이라는 도덕위기사회라고 몇 분의 대통령께서도 지적했다. 도의문화 사회는 가정사랑 실천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 안방이 살아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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