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토요일 아침이었다. 그날은 아내가 병원에 입원중인 장모님의 병간호를 맡는 당번이어서 서울에 가는 날이었다. 다음 날 조카의 결혼식도 있고 하여 나도 휴가를 내고 함께 서울에 가기로 하였다. 오전 11시쯤 출발할 생각으로 출근할 때 보다 늦게까지 잠을 자고 9시쯤 일어나 아직 잠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 막 화장실에 다녀오는 중이었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아직 정신이 조금 덜 든 상태로 ‘아침부터 누구지?’하고 작은 모니터를 들여다 보았다. 옆 모습의 중년 여자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통로의 반장인 것 같았다. 한 손에는 종이와 볼펜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잠자리에서 막 일어나 잠옷도 갈아입지 못한 상태로 나갈 수도 없고, 아내 역시 잠은 깼지만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여서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반장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 버렸다.
아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반장인 것 같은데 그냥 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잠시 머뭇거린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랬더니 아내는 반장인 줄 알았으면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자기에게 이야기를 하지 그랬느냐는 것이었다. “당신도 아직 잠자리에 있었고 또 잠옷 차림이어서… ” 했더니 ‘그래도 우리가 곧 서울에 가서 일요일 저녁에나 오는데 그 사이에 꼭 필요한 서명이면 반장이 몇 번이나 헛수고를 할 수도 있지 않느냐’면서 좀 한심하다는 눈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보니 아내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그 순간엔 그런 생각이 들지를 않았으니 문제였다. 나 자신이 정말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 내내 나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 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며칠 뒤 책을 보다 나보다 조금 더 한심한 두 남자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한 정신 없는 남자가 밤 늦게 집을 향해 운전을 하고 있었다. 가는 길에 다른 남자가 손짓을 하면서 태워달라고 하였다. 차를 세우고 방향을 물어보니 같은 방향이어서 그 남자를 차에 태우고 한참을 가다 보니 불현듯 좀 수상한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고 생각한 지갑이 좀 걱정이 되어 슬쩍 손으로 만져보니 지갑이 없었다. 그 순간 그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옆에 탄 남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서 지갑을 내놓고 차에서 내려!”
그러자 겁에 질린 그 남자는 지갑을 얼른 자리에 놓고 차에서 뛰어내렸다. 내린 남자가 어떻게 할까 봐서 운전을 하던 남자는 급하게 차를 몰아 집에 도착하였다. 그리곤 퇴근 길에 당한 일을 아내에게 말하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내는 “당신 오늘 지갑을 책상 위에 두고 갔던데요?” 하는 게 아닌가.
뇌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에 비해 뇌기능의 비대칭성이 더욱 심하다고 한다. 즉 언어기능이나 공간지각능력 등을 담당하는 부위가 남성은 한 쪽 뇌에 치우쳐 있는 반면 여성들은 덜 치우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왼쪽 뇌를 다친 경우 남성이 여성에 비해 언어능력의 상실이 훨씬 더 치명적이라고 한다. 남성들이 외골수인 경우가 많은 게 이러한 뇌기능의 비대칭성과도 상관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황할 때 여자들 보다 더욱 한심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지도 모른 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실수를 하고 산다. 그것이 다행히 작은 것이어서 쓴웃음 한 번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때론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사람들은 좀 당황스러울 때 생각의 폭이 좁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당황할 때에도 상대방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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