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대전을 예양(禮讓)의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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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대전을 예양(禮讓)의 도시로…

  • 승인 2005-01-29 02:48
  • 권영원 대전시사편찬 연구위원권영원 대전시사편찬 연구위원
우리는 도시마다 내세우는 관습의 말이 있다. 이를테면 ‘선비의 도시’ ‘문화의 도시’ ‘소비도시’ 등 그 지방의 특색을 언어로 표현하여 내세운다. 또 충청도 양반, 경상도 문동이, 전라도 개땅세, 서울 깍쟁이, 강원도 감자바위 등등. 충청도는 양반이라도 했다가 핫바지라고도 뇌까린다.

대원군이 조선8도 민심풍을 일컬을 때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맑은 바람에 밝은 달),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바람 앞에 가는 버들), 경상도는 태산교악(泰山嶠嶽·태산 위에 높은 뫼뿌리), 강원도는 암하노불(岩下老佛·바위 밑에 늙은 부처), 서울 경기는 경중미인(鏡中美人), 황해도는 황우경전(黃牛耕田·밭갈이하는 황소), 평안도는 맹호출림(猛虎出林·숲속에 내닫는 호랑이), 함경도는 이전투구(泥田鬪狗·진흙밭에서 싸우는 개) 등 그 지방 민심의 특성을 평한 것이었다.

대전(大田)은 예부터 예(禮)스럽고 겸양스러운 민심이 보인다. 그것은 대전에서 나온 인물이 송시열, 송준길, 박순, 권시, 이유태 등 예학(禮學)에 밝은 학자가 살았던 유풍이 아직도 대전 민심을 가꿔온 탓이라 하겠다.

왕조실록에 보면 효종 원년5월14일에 인조가 죽고 효종이 즉위하자 대신들이 회빈청(會賓廳)에 모여 임금에 아뢰기를 “조정에 머물러서 예의를 논할 자는 김집, 송시열, 송준길, 권시, 이유태”라고 하였다. 효종은 그 5현(賢)들에게 밀지(密旨)를 의논케 하였다. 이들이 모두 대전의 인물이고 호서유학(湖西儒學)의 근간이 되어 오늘날 호서명현의 대두가 되어 미풍양속을 이룬다.

이러한 미풍양속을 이어서 우리는 예양(禮讓)의 도시로 가꿔보자는 것이다. 논어 이인(里仁)편에 보면 “능히 예양으로 한다면 나라 다스리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라고 하여 공자는 예양을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로 보았다.

우암 송시열도 “예양이란 나라 다스리는 근본이다”, “예양으로써 하면 백성들이 감히 공경치 않는 이가 없고, 백성이 공경치 않는 이가 없으면 어찌 어려운 다스림이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만회(晩悔) 권득기(權得己)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뿐 아니라 개인 수양에도 예양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오늘날 가장 부족한 것이 예양이다. 나라를 다스리거나 가정을 다스리거나 직장이나 개인 수양에서 예양은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으로 먼저 실행해야 할 덕목이지만 그냥 지나치기 쉽다. 오늘날 정치인들에게는 예양이 보이지 않으니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고 할 때 한탄스러울 뿐이다. 배우는 학생들마저 예양은커녕 시험에 속임수를 쓰고 있다니 한심스런 일이다.

예양은 흐트러져 가는 사회질서를 되살릴 수 있는 중요한 덕목이다. 그리하여 대전을 예양의 도시로 이끌어 가는 운동을 일으키자는 것이다. 밖으로는 대전시가 내세운 슬로건 ‘It’s Daejeon’처럼 과학문명이 눈부신 사회를 이룩하고, 안으로는 정신문화가 성숙한 예양정신으로 도시를 번영시켜가자는 것이다.

예양의 일은 어려워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周易)에도 “쉬우면 알기 쉽고, 알기 쉬우면 좇기 쉽고, 좇기 쉬우면 공(功)이 있고, 공이 있으면 오래가고, 오래 가는 것은 현인(賢人)의 덕”이라고 하였다.

지난해 12월 대전시청에서 열렸던 ‘호서유학의 현대적 계승 세미나’는 예양 정신을 살리는 데 취지가 있었다.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서 저마다 솔선하여 예양운동을 펼쳤으면 한다. 아직도 대전은 선현들의 예양하던 유풍이 남아있어 조금만 권면(勸勉)하여도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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