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아침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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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춘추]아침의 단상

  • 승인 2005-01-28 03:06
  • 김영수 한남대 종합서비스센터 소장김영수 한남대 종합서비스센터 소장
아침 바람이 매섭다. 밤새 바람과 안개가 계룡산, 보문산, 계족산, 식장산 등 사방의 높고 낮은 잔설이 희끗희끗한 산봉우리들 병풍아래 몹시도 다퉜나 보다.

사방팔방 사이사이를 뚫고 잠든 도회의 골목골목을 누볐으면 이제 가라앉을만 한데도 거추장거리 없는 대전천을 쏜살같이 타고 올라와 식장산 고개 넘어 살며시 고개들어 얼굴 붉히며 현암교에 살짝 내리 앉은 햇볕과 조우한다. 그러나 아직은 바람이 우세하다.

묵묵히 가로수를 밤새 지켜주던 가로등은 임무교대를 햇볕에게 한다. 서서히 사람들은 법석을 떨기 시작하고 아침을 뚫고 차들은 쌩쌩 달린다. 가끔 먼 곳에서 기차가 토해내는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

붉은 신호등이 노려보는 건널목에 홀로 선다. 아무도 없으니 빨리 건너가라고, 이 융통성 없는 사람아, 하고 추위가 등을 떠민다. 그러나 그래선, 안된다고 의지가 다리를 붙잡는다. 그렇게 앞뒤보지 않고 돌격대처럼 살아온 나날들이 이젠 지난날들이 되었다. 그것이 전부인줄 알았고 마땅히 그렇게라도 해야 되는 줄 알았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의 그릇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었는지 모른다.

나는 다 옳은 일이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상처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붉은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나는 얕잡아 보았고, 빨리 건너야 한다고 재촉했다. 되돌아보면 부질없는 욕심 때문이었다. 천천히 지켜가도 도착점은 마찬가지인데. 오고 가는 길은 정해져 있는데. 상처가 아물어 졌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귀까지 푹 덮어쓴 모자는 간밤의 세상살이를 전해주려는 바람의 제의를 거절한다. 하루종일 떠도는 말에 놀아나야 한다. 검증도 확인도 없이 편견에 집착해 갈등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신앙처럼 소신을 내뱉는 사람들은 절대로 고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월이 가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오늘만 있는 줄 안다. 그렇다고 귀닫고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아침은 보지 않고 듣지 않으니 덜 오염돼서 하루 중 가장 깨끗하기도 하다.

허리에 찬 만보기는 걷는 것을 주저하게 하지 않는다. 이제 절친한 도구가 됐다.
그렇다고 만보라는 걸음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끔 지칠 때는 몇 걸음 더해주면 좋으련만 욋길 모르는 기계는 바보다. 사람이 입으로 셀 때는 껑충 뛰어 앞자리 숫자를 셀 수 있지만 아직까지 기계는 그런 능력이 없다.

오늘도 낯익은 아침의 거리를 걷는다. 몇 개의 건널목과 육교, 그리고 가게들을 이제는 외운다. 그러나 항상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1m도 안 되는 짧은 쇠사슬에 묶여 1년 내내 고물상가게 양쪽을 지키는 개들이다. 이제는 낯이 익어졌지만, 그 개들은 인간의 잔인성을 말하려는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지 항상 마주칠 때 마다 멍하니 쳐다본다. 오늘 아침에도 주인은 드럼통에 불을 피워 쬐고 있었다. 허긴 나도 욕심의 짧은 쇠줄에 묶여 발버둥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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