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명당에 독립기념관이 들어서 겨레의 얼을 지키고 있어 이 흑성산이 겨레의 명산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독립기념관 자리와 관련해 조선 영조 때 유명한 어사 박문수의 일화가 전해진다. 즉 그가 죽자 묘소를 지금의 독립기념관 자리에 쓰려고 하니 어느 지관이 “이곳은 200~300년 후에 나라에서 긴요하게 쓸 땅이므로 그 때 가서 이장(移葬)을 해야 하므로 동쪽에 쓰라”고 권하여 지금의 천안시 북면 은석산에 묘소를 정했다고 한다.
이 흑성산의 원래 이름은 검은산(儉銀山)이었다고 한다. 일제 때 ‘검은(儉銀)’ 을 ‘검다(黑)’는 뜻을 그대로 옮겨 검은(黑 )성(城) 즉 ‘흑성산’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런 예는 또 있다. 한동안 ‘대전(大田)’의 옛 이름 ‘태전(太田)’ 찾기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것 역시 일제가 자기들 멋대로 ‘대전’으로 바꾼 것이다.
1904년 당시 신흥 마을인 이곳(대전)에 기차역이 생겼는데 역 이름을 산내면 태전리(山內面에 太田里)에서 따 ‘태전역(太田驛 )이라 지었다.
그런데 당시 조선 총감이던 이토오 히로부미가 기차를 타고 순시 중에 태전역에 잠시 내렸는데 넓은 들과 아름다운 산세가 좋아 역장에게 지역 이름을 물었다.
역장이 ‘태전’이라고 대답하자 이토오가 ‘태전(太田)’이라 하지 말고 ‘대전(大田)’으로 부르도록 지시해 이때부터 ‘대전역’이 됐고 그 후 면(面)이 설치되자 대전면(大田面)이 됐으며 결국 오늘까지 이 땅의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뜻있는 일부 향토인들 사이에서 대전의 ‘태전찾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한가지, 산을 좋아하는 분들은 제주도의 ‘오름’에 대해 관심이 많을 것이다. ‘오름’이란 제주도의 분화구로 된 작은 산(峯)을 이른단다.
북제주에 가면 4?사건으로 폐촌된 ‘다랑쉬(또는 도랑쉬, 달랑쉬) 마을’이 있고 그 인근에 ‘다랑쉬 오름’이 있는데 해발 200여 m 밖에 안되지만 경사가 60~70도의 급경사로 오르기가 제법 어려운 곳이다.
‘다랑쉬’의 의미는 산봉우리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다하여 다랑쉬 또는 달랑쉬 등 구전으로 전해오는데, 학자들은 고구려의 ‘달(達)’과 같은 말로 ‘높은 봉우리’로 해석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다랑’ 즉 ‘작은 논’과 ‘쉬’ 즉‘수렁’에서 비롯돼 다랑쉬는 ‘작은 진흙 논’으로 풀이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도 일본인의 손에 의해 ‘다랑쉬 마을’은 ‘달(月)+랑(郞)+마을(里)’이라 하여 ‘월랑리(月郞里)’로 바뀌고 ‘다랑쉬 오름’은 ‘月郞+오름(峯)’이라 하여 ‘월랑봉(月郞峯)’이라는 터무니없는 이름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밖에도 우리 금수강산의 무수한 산과 들, 강이 이런 일제의 억지에 의해 엉터리 이름으로 불리며 본래의 훌륭한 이름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산의 정기를 끊는다 하여 산에 말뚝을 박은 것보다 더 지능적으로 우리 민족 혼을 교묘하게 빼앗은 만행에 다름 아니다.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주신 조상님들이 지하에서 통탄하실 일이다.
올해는 광복 60년이 되는 해, 광복의 얼을 담은 독립기념관을 감싸듯이 서있는 명산 흑성산이 일본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라니 옛 이름 되찾기를 서둘러야 할 일이다. 더 이상의 수치(羞恥)가 되지 않도록 반드시 제 이름‘검은산(儉銀山)’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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