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수 부국장 |
오히려 아이의 언어성장이 늦어지고 자율성, 적극성등 인격발달에 커다란 장애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TV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깨기 위해 11년째 ‘TV안보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서영숙 숙명여대 교수(53. 아동복지학과)가 지난 18일 발족한 범국민 시민운동모임 대표를 맡으면서 한 신문과 가진 인터뷰 내용중 일부다.
이른바 ‘TV중독’으로 인한 폐해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931년 세상에 첫선을 보인 이래 지금까지 TV처럼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칙사대접을 받는 물건(?)도 드물다. 잘사는 집이든 못사는 집이든, 도시든 농촌이든 TV가 안방 또는 거실의 가장 중심부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모양새부터가 그렇다.
한술더떠 밤 낮, 애 어른,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안에서 펼쳐지는 가상현실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양(洋)의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마치 그것이 삶의 전부처럼 보일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바보상자’라는 원시적 비유에서부터 ‘리모컨 아빠’, ‘TV중독증환자’, ‘유아비디오증후군’, ‘TV커미셜 비만’등 이름마저 생소한 신조어까지 생겨나고 있다.
우리를 더욱 주눅들게 하는 것은 또있다. TV시청시간이 그것이다. 4년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TV시청시간은 3시간 23분, 휴일에는 4시간을 넘는다고 한다. 어림잡아 1년에 68일을 TV앞에 있는셈이다.
인간의 뇌파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TV가 뇌에 미묘한 이완감과 편안함을 줘서 계속 TV를 켜고 싶게 만드는 과정이 약물중독과 매우 흡사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나아가 비만, 수면장애등 각종 질병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경고하고 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일년에 68일을 ‘보는 마약’에 중독된 상태로 살고 있다면…. 오싹해질 따름이다.
어른들에 비해 판단력과 사고력이 떨어지는 어린이의 경우는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美 뉴욕주립 정신의학연구소가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은 이에대한 근거를 극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TV시청시간이 하루 3시간 이상인 아이들이 1시간 미만인 아이들에 비해 강력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4배이상 높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영,유아기에 TV시청시간이 하루 1시간 늘어날때마다 취학연령이 됐을때 주의력에 문제가 생길 확률은 10%씩 높아지며 언어장애로 이어질 확률은 최고 2배나 된다는 일본 소아과학회의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를 섬뜩하게 하기까지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 호주 일본등 각국이 아이들을 TV로부터 보호하기위해 법 규제를 강화하는등 법석을 떠는 것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고 TV가 부정적인 면만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필요한 정보와 오락제공등 긍정적 기능이 많다. 뿐만 아니라 잘만 활용하면 교육적 효과까지 올릴 수 있는 유익한 매체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그것이 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있다. 오늘날 TV는 우리의 안방만 점령한게 아니다. 어른은 물론 청소년, 어린이, 심지어 유아들의 자아형성과 정서마저 손아귀에 넣고 있다.
우리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내 가정,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그 중심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TV에 맞서 이제부터라도 ‘리모컨 아빠’에서 벗어나기 위한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TV가 좋은 것을 보여줄 때는 무엇도 이룰 능가하지 못한다.
그러나 TV가 나쁜 것을 보여주게 되면 더 이상 나쁜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끝나는 시간까지 보아도 끊임없이 펼쳐진 거대한 황무지만 보게 될 뿐이다” 고 설파한 美 연방통신위원회 ‘미노우(Minow)’의장의 독설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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