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를 준비하다 불혹을 넘어 뒤늦게 법무사에 합격을 한 친구인데 이 친구 말이 “일 좀 해야겠는데 변호사들이 법무사 직역을 침범해 일감을 맡기 어렵다”는 불평이었다.
사실 상당수 변호사가 그간 법무사의 주요 직역이던 등기와 소송서류 작성 등 기존에 취급하지 않던 일을 업무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변호사들보고 기존에 법무사들이 하는 일이므로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그만큼 변호사업계도 불황이기 때문이다.
사법시험에 매년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선발되고 있다. 이번 달 사법연수원 수료자중 무려 320명(33.4%)이 일자리를 잡지 못한 채 연수원을 떠났다는데 지난해 수료생 966명 가운데 213명(22%)이 미취업자였던 것과 비교해도 심각해진 취업난을 반영하는 결과물이다.
얼마전 대전지역 변호사들의 사건수임 관련 통계가 언론에 보도됐지만 지난달 단 1건의 사건도 수임하지 못한 변호사들도 있다는 것은 업계불황이 그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 송무사건은 늘지 않고 변호사수는 많아지니 변호사들이 과거 취급하지 않던 법무사일을 취급하는 것이고 그 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변호사들이 부동산중개업을 하겠다고 나서 법원에서 다투고 있으니 가정이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부동산중개도 변호사와 공인중개사가 직역다툼을 할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것이 변호사 양산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사법고시 1000명 시대’는 구체적인 타당성을 갖고 결정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YS정부시절 법률적 수요와 유사직역에 대한 영향 등을 세밀히 검토하지 않고 포퓰리즘식 개혁을 하다보니 벌어진 일이다.
당시 사법개혁이 화두로 떠올랐을 때 주말 시사생방송 토론시간은 변호사들을 ‘공공의 적’으로 매도하고 욕을 해댔다. 토론이라기 보다는 인민재판에 가깝다는 많은 법조인들의 안타까움은 뒤로하고 사회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갔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사법개혁에 찬성이지만 다만 개혁이라는 것이 체제를 뒤집는 혁명이 아닌 이상 제도변경에 따른 사회적 충격을 흡수해가면서 그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에 부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구잡이로 숫자만 늘려놓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다른 직역을 거론해서 그러하기는 하지만 과거에는 건축사들이 변호사들보다 더 수입이 좋은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워낙 많이 선발하는 바람에 친분이 있는 모 건축사는 공인중개사로 변신해 10여년 만에 돌변한 업계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공인회계사들은 어떠한가. 최근 모 통신회사 신입사원 채용에 응시한 공인회계사 200여명이 모조리 탈락되고 또 다른 업체에서는 98명중 2명만 합격을 시켰다고 한다. 연간 100명을 선발하던 것을 1000명으로 확대해 자격증의 효용가치가 떨어지다 보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모든 개혁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이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인지 지금단계에서 미리 그 결과를 추단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대통령말대로 이해관계를 떠나서 추진한다 해도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사회적인 파장을 고려해 그만큼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 한승헌위원장이 “고치고 바꾼다고 모두가 개혁은 아니며 중요한 것은 올바르게 고치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나는 같은 맥락이라고 믿는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