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 연구원 |
1946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은 1만8000개의 진공관이 달린 30t 무게의 거대한 계산기였다. 이후 81년에 ‘IBM PC 5150’을 시작으로 개인용 컴퓨터 (Persnal Computer) 개념이 등장했고, 90년대 인터넷 환경이 조성되면서 PC는 우리 생활 속으로 급속히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제 사무, 정보검색, 오락, 통신 등의 기능을 통합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됐다. 머지않아 손목시계형 PC나 옷처럼 입는 차세대 PC도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PC는 실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PC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무한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최근에는 과학기술 R&D에서도 PC의 잠재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사무기기나 생활가전 정도로 인식되던 PC가 첨단 R&D의 필수장비인 슈퍼컴퓨터화 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컴퓨터란, 대용량 초고속 연산이나 시뮬레이션에 사용되는 장비로서, 국가 슈퍼컴퓨팅센터가 있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는 8테라플롭스(1초에 8조번의 연산수행)의 컴퓨팅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개인용 장비인 PC가 슈퍼컴퓨터화 할 수 있는 것일까?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PC클러스터 슈퍼컴퓨터’다. 이것은 여러 대의 PC 서버들을 고성능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고성능 슈퍼컴퓨팅 자원을 확보하는 것으로서, 수백 억 원대의 슈퍼컴퓨터를 구입하는 것에 비해 10분의 1가격으로 동일한 성능을 낼 수 있다.
KISTI는 이 클러스터 방법을 집중 개발해 2010년까지 페타플롭스(1초에 1000조번 연산)급의 슈퍼컴퓨팅 자원을 독자적인 기술로 구축 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세계 최상위권의 슈퍼컴퓨팅 강국을 꿈꾸고 있다.
두 번째는 인터넷을 통해 PC의 유휴자원을 모아서 마치 슈퍼컴퓨터처럼 활용하는 방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KISTI의 Korea@Home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문서작업, 인터넷, 게임 등으로 사용하는 PC의 CPU는 최대 능력 대비 10% 안팎이며 나머지 90% 정도는 유휴 상태로 남아있다.
국내 인터넷 이용자수가 3000만 명이 넘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 가운데 약 0.5%만 Korea@Home 프로젝트 참여해도 세계 10위 수준의 슈퍼컴퓨팅 파워인 10테라플롭스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Korea@Home에는 약 만대의 PC가 참여하고 있으며, 이렇게 모아진 컴퓨팅 자원으로 신약후보물질탐색, 글로벌리스크관리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빠르게 대형화 고속화되고 있는 국제적인 R&D 흐름 속에서 슈퍼컴퓨터의 중요성은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 슈퍼컴퓨팅 파워가 그 나라 과학기술 수준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미래를 이끌 가장 중요한 핵심기술 중 하나로 슈퍼컴퓨팅을 지목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유체역학이나 생명정보공학 같은 대형 기술개발은 물론 김치냉장고나 TV같은 생활가전제품을 개발하는데 있어서도 슈퍼컴퓨터가 필수적인 장비가 돼 가고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라는 소설에서 수십, 수백억 마리 개미의 뇌가 모여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만든다는 픽션을 얘기했다. 개미 사회에서는 이것이 픽션일지 모르나, 과학기술계에서 일반 PC가 모여 만드는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은 논픽션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