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덕담을 나누는 건 지구촌의 공통적인 미풍양속이다. 중국 사람들은 “꽁시파차이”(恭禧發財)라고, 우리로 치면 “부자되세요” 쯤 되는 말을 건넨다. 양력설을 쇠는 일본은 ‘음식 덕담‘도 있다. 설날에는 쌀밥을 먹지 않고 새우 검은콩 다시마 무 등을 섞은 별식을 먹는다. 새우는 장수를, 검은콩은 열심히 노력하라는 뜻이며, 다시마는 일년 내내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상투화된 감이 없지 않고, 고단한 삶을 슬쩍 코팅한 당의정 같은 가벼움도 있지만, 들을 때나 말할 때 기분이 한껏 고양되는 듯한 느낌은 덕담이 가진 미덕이라 할 것이다. 어떻게보면 일상적인 삶을 한껏 우아스럽게 색칠해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드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악담으로 개칠된 잿빛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을 속이고, 해치고, 상처를 주고, 아픔과 슬픔을 주는 언어폭력이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다. ‘마음의 소리’이며 ‘정신의 얼굴’인 말에 가시가 돋치고, 비수를 숨겨서야 어디 사람살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새해 덕담처럼 밝은 말들이 악담을 밀어내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람의 말에는 그렇게 되라고 하면 그렇게 되어지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한다. 덕담이란 단순히 ‘그렇게 되십시오’라고 축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미 그렇게 되셨으니 고맙습니다’라는 언령관념(言靈觀念)이 배어있다고 최남선은 풀이한다. 언령관념을 기대하는 의미에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게 정치인들의 덕담이다.
높으신 분들이라 그런지 4자성어가 대부분이다. 이해찬 총리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다), 이헌재 부총리는 ‘여시구진’(與時俱進, 시간과 함께 더불어 전진하다)을 내놓았다.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다시 고쳐 매다)이다. 서로 화합하고, 함께 전진하고, 마음자세를 가다듬어 한 해를 시작하자는 의미이니 이의가 있을리 없다. 그대로 되었으면 하고, 그 말 꺼낸 어른들부터가 모범을 보여준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
새해 들어서도 걱정거리는 역시 정치다. 내달 열리는 임시국회는 국보법 등을 둘러싼 회오리가 이미 예고돼있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지도부를 교체했지만 강경파가 세를 얻고 있는 상황은 바람의 강도가 결코 낮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초장부터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또 재보궐 선거가 있다.
여야의 결사적인 경쟁이 불을 보듯 뻔하다. 과반을 지키려는 여당과 이를 무너뜨리려는 야당이 충돌하면 국민만 골병든다. 그 회오리에 휩쓸려 경제살리기며, 일자리 대책이며, 취약계층 지원이며, 중소기업 육성대책 등등 숱한 민생현안들이 날아가 버리지는 않을 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신 행정수도 대안 마련도 뒤로 뒤로 미뤄지지는 않을 지 걱정이 앞선다.
정치가 평안강녕(平安康寧)하기만을 비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언령관념에 기대어 정치인들에게 덕담을 들려주고 싶다. “새해 정치는 부디 백성의 마음을 읽어 국민들의 박수를 받으시라. 그리고 한해 내내 안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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