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중에서 세계주의와 문화주의는 동반자 관계를 가지면서 ‘문화적 세계주의’를 불러오고 있다. 요즈음 뉴욕 맨해튼 그린니치 빌리지로 부터 동경의 신주쿠, 서울의 강남지하철역 그리고 나이지리아의 아부자에 이르기 까지 젊은이들은 나이키를 신고 Lee 청바지를 입으며 빅맥으로 점심을 때우고 스필버그 영화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팝을 즐긴다.
60년대 반(反) 베트남 전쟁운동이 서유럽과 북미의 대학 캠퍼스를 뒤덮을 때 젊은이들은 체 게바라 모자를 쓰고 비틀즈를 들으며 거리에서 평화를 외친 적이 있다. 60년대 젊은이들이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문화적 단결을 이루었다면, 2000년대의 젊은이들은 나이키, 맥도널드 그리고 스필버그를 통해 단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60년대의 문화적 단결이 서유럽과 북미대륙의 젊은이들에게 한정되어 나타났다면 2000년의 문화적 단결은 전지구촌의 젊은이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문화적 세계화 과정의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그러면, 오늘날 지구촌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감성적 문화적 단합 양식은 문제가 없는가? 단일한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젊은이들이 ‘나도 그들 중의 하나’라는 소속감과 동질성을 가지려고 한다고 판단된다. 요즈음 중?고??학생들에게 번지는 명품(名品)소비 풍조처럼 동일 상품 소비를 통하여 사회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려고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얼마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철학이 빈곤하고 자기 정체성의 빈곤을 겪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둘째, 보다 우려되는 것은 젊은이들이 문화적 제국주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문화라는 양식 뒤에는 항상 이데올로기와 가치가 숨어 있다.
예를 들면, 할리우드의 폭력과 성(sex)은 미국 시장주의가 낳은 결과이다. 폭력과 성(性)은 인간의 본능을 유쾌하게 만들고 오락주의를 극대화한다. 그리고 이에 편승하여 할리우드는 시장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하려고 한다.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쓰레기 음식(Junk food)들 역시 식생활에 있어 극단적 편리주의만을 추구하는 미국인들의 태도가 녹아 있다.
‘감성적 단결주의’에 대신하여 젊은이들이 건전한 소속감과 동질성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개입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철학의 빈곤을 극복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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