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칼럼]오래된 사진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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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칼럼]오래된 사진과의 대화

  • 승인 2005-01-12 00:00
  • 김태임 대전대 간호학과 교수김태임 대전대 간호학과 교수
을유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유난히도 바쁜 1년을 보낸지라 올 새해는 조금은 여유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새해 연휴기간 동안 그 동안 밀어 두었던 집안 정리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구석구석 숨어 있는 물건들을 꺼내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 학기 중에 이사까지 한지라 집안 구석구석 정리되지 않은 흔적들이 즐비했다.

학기 중에는 그와 같은 무질서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손을 댈 시간이 없어 방치해 둔 터였다. 올 새해만큼은 그 스트레스를 연장시키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남편과 아들을 부추겨 일을 시작했다.

우선 각자의 짐들을 정리하기로 하고, 온 가족이 나름대로 분주하게 무언가에 각각 열중하고 있을 무렵 시부모님의 오래된 사진첩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얼마 전에 남편이 서울에서 가져온 시부모님의 유품 속에 들어있던 것이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정리도 못하고 장롱 속에 넣어 둔 것을 이제야 꺼내어 열어보게 되었으니 그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그지없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사진첩이었다.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들인지라 오래된 사진첩은 상당히 생소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사진첩은 세월의 흐름을 말해 주려는 듯 표지가 먼지로 코팅이 되어 있었고, 그 속의 흑백 사진들은 퇴색하여 흐린 갈색을 띠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사진첩을 넘겨가는 동안 시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사진 속에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상상조차도 해보지 못했던 낯선 얼굴이 들어 있었다. 내가 처음 시부모님께 인사드렸을 때 이미 60대였으니 연로하신 모습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갑자기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의 머리 속에 시부모님의 청년시절이 아예 삭제되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도 죄송하게 말이다. 사진을 보고서야 삭제된 시절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가지 변화는 사진을 보고서 삭제된 시절만큼 그 분들이 가깝게 느껴졌다는 사실이었다. 두 분이 이 세상에 계셨을 때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면 좀 더 두 분을 이해하고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사진 속의 젊은 모습에서 아버님과 어머님의 흔적을 찾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아! 이들에게도 우리 모두가 지나온 숨겨진 세월이 찬란했던 봄날이 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진첩을 몇 장 더 넘겨보니 두 분의 결혼식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몇 장을 또 넘기니 이제는 남편의 어린 시절 모습이 들어 있었다. 아들의 어린 시절 모습과 닮은 부분이 있음에 잠시 미소를 머금기도 하였다.

시아버님은 매우 검소하고 성실하신 분이셨다. 그 분의 검소함과 성실함은 사진첩 속에도 그 흔적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사진의 접착 부분이 떨어진 곳에 까만 비닐 테이프가 붙여 있었고, 남편의 어린 시절 아버님께서 손수 만들어 주신 썰매를 타고 있는 남편의 모습도 눈에 들어 왔다. 나는 오래된 빛바랜 사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느라 집안 정리를 그 다음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진 속에 비춰진 모습 속에 세월의 흐름이 그대로 배어나와 사진 찍기를 싫어했었는데, 을유년 새해에 빛바랜 낡은 사진첩을 본 후로는 마음을 바꿔 열심히 사진을 남기리라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아들이 결혼하여 며느리를 보게 되면 며느리에게 남편과 나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첩을 보여주리라 다짐해본다. 우리가 지나온 세월을 도둑맞지 않고, 좀 더 서로가 친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오늘 갑자기 시부모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돌아오는 설날에는 평소보다 더 정성을 들여 차례음식을 준비하고 그 분들을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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