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여행이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난 1년을 정리하고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새로운 마음을 갖자고 카메라를 챙겨들고 떠난 것이다. 날씨가 좋지 않아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땅끝 마을에서의 일출은 장엄하게 연출되었다. 어찌나 감사하고 흥분되던지….
하지만 해가 떠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은 잿빛으로 바뀌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올 겨울 첫눈을 낯선 남녘 마을에서 맞이한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어린 시절의 겨울 방학이 생각났다.
그 때는 지금의 겨울보다 훨씬 더 춥고 눈도 많이 내렸지 싶다. 흰 눈이 온 마을을 뒤덮은 날 아침이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벌써 친구들이 모여있을 마을 공터로 줄달음쳤다.
눈사람을 만드는가 싶으면 어느새 눈싸움으로 바뀌어 있었고, 한쪽에서는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자치기가 한창이었다. 점심때가 훌쩍 지나도록 놀다보면 옷은 물론이고 양말, 신발도 다 젖기 일쑤였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젖은 옷을 말리느라 둥그렇게 모여든 아이들의 볼과 손은 트고 갈라져서 거칠기 짝이 없었다. 아침에 눈뜨면 들판으로 나와 해가 다 저물도록 찬바람 속에서 놀았으니 오죽했으랴. 부모들도 밥 때가 되면 불러 먹이는 것 이외에 노는 것에는 상관을 하지 않으셨다.
그 때의 우리들은 노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으므로. 수업 시간에 가끔 내 어릴 적 놀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이구동성으로 “학원은 안가요?”라고 묻는다.
학원이 뭔지도 몰랐다는 내 대답에 아이들은 와! 하는 부러움 섞인 탄성을 내지른다. 왜 부럽지 않으랴. 방학을 해도 학원 두세 군데는 기본이고 오히려 할 일이 더 많아져 방학이 싫다고까지 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인 것을.
학원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손과 볼이 다 트도록 밖에서 뛰놀 수 있어서 좋았던 내 유년 시절의 겨울 방학과 할 일이 많아져 싫다는 요즘 아이들의 겨울 방학, 그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새삼 오늘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우리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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