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보는 00가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 데 옆의 미국인 아가씨를 소개해준다. 같은 방 대학원생이라나.
그 아가씨 하는 말, “00는 너무 심각해요. 저는 다른 것도 그렇지만 실험도 재미로 하는 데.”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 사람은 내 가슴 속 한 쪽에 유배되어 있었던 과학의 본질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과학을 한다는 것이 애초에 나에게 별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천재 과학자처럼 달걀을 품으면서 병아리가 나올 것으로 기대할 만큼 순수하지도, 열정에 넘친 호기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담임선생님이 권하는 대로, 성적에 따라서 입학한 생물학과였다. 그래서 그런지 재미가 없었고 군대가 일종의 탈출구가 되었다.
필자가 대학을 입학하던 70년대 말에 형님은 대학을 졸업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수많은 기업소개서와 지원서가 집으로 배달되었고 형님은 직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도 대학을 졸업하면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 걸! 경제도 좋지 않았지만 아무도 지방대학을 졸업한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학부 때 시간 보내던 실험실 생활을 연장하듯이 대학원엘 갔고 자동으로 박사까지 진학하였다. 와중에 덜컥 취직한 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왜 과학자는 부와 명예 중 어느 하나라도 가질 수 없는 가에 대해서 분노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어느 날 생각해보니 박사학위도 따고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때로는 불행하고 때로는 행복하였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하였을까,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때 늦은 의문은 여러 해 동안 나를 참 괴롭게 한 좋은 친구였다. 그리고 그 친구와 함께, 학자는 일을 할 때 불행하고 연구할 때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즉, 반복되거나 관계 없는 일을 하는 것보다 많은 실패가 있지만 남이 아닌 나의 생각을 현실로 구현하는 일이 기쁘고 적성에 맞았던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이 과학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꼭 노벨상이 아니더라도 과학은 그런 프런티어 정신으로 해나가는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천재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은 얼마든지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으며 그 것은 존중되어야 한다. 존경하는 나의 동료 한 사람이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은 급한 일, 중요한 일, 하고 싶은 일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는 급한 일 때우느라 하고 싶은 일은 커녕 중요한 일조차 대충 넘길 때가 많다. 나는 정말 재미있는 과학을 하고 싶다. 그래서 행복하고 싶다.
이러한 결론을 내 마음과 몸에 내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직 나는 젊으니 그 일을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은 남아 있는 듯 하다. 그렇지만 좀 더 어릴 적에 스승이나 선배와 같이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엇비슷한 나이의 연구원들과 함께 실험하고 소주 한잔 나눴었는 데 이제 주위에 20년씩 차이가 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일이 아닌 과학의 꿈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실천하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정확한 시점이나 동기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과학은 언젠가부터 나에게 의미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때 나는 방향키를 잡은 듯 하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과학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의 꽃 향기를 다른 사람도 맡게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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