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작년 10월 21일 신행정수도특별법이 헌재에 의해 위헌으로 판결나기 며칠전인 10월 9일, 만일 특별법이 위헌으로 판결날 경우 어떤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최악의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대비책을 철저히 해둘 것을 촉구하는 글을 모 신문칼럼에 실은 바 있다.
그 후 가상적인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예상들은 속속 가시화 되었다. 역사는 결국 정의를 향해서 나아간다 하더라도 때로는 우연치 않은 사건으로, 때로는 잘못된 판단 때문에 후퇴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더욱이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지역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중앙 및 지방정부가 효과적인 위기관리체제를 마련하지 않으면 지역민은 물론 전체사회가 겪는 혼란과 피해가 막대하다는 사실도 교훈으로 얻을 수 있었다.
최근 정부는 후속대책위원회를 통해 여러 대안을 검토중이고 국회도 후속대책특위를 가동해서 최종 합의안을 2월 말까지 만들어낼 것이라고 한다. 또 지난 6일 특위 4차 회의결과를 보면, 최근 정부가 제시한 행정특별시, 행정중심도시, 그리고 교육과학연구도시의 3개안은 명칭은 달라도 내용적으로 유사한 복합도시로서 정부가 단일안을 마련하여 제출하면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렇게 되고 국민 대다수가 동의해서 실효성있는 새특별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라 신행정수도가 지속 추진된다면 얼마나 바람직하겠는가. 그러나 현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아서 후속대책을 잘못 세우면 지난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이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위기관리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특위가 시간과 합의에 쫓겨 3개안을 적당히 혼합해서 신행정수도와 거리가 먼 단일안을 내놓는다면 국가경쟁력 강화와 지방살리기라는 당초 목표는 사라지고 그야말로 재정낭비만 초래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지 모른다.
얼마전 헌재의 위헌 판결 전후에 잠잠했던 법무부가 유력한 대안중 하나인 행정특별시에 대해 위헌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난 후 한 발을 빼긴 했지만, 앞으로 위헌시비는 수도권 단체장들의 비호하에 지난 번 헌법소원을 냈던 집단들에 의해서 반드시 제기될 것이다. 최종안이 행정특별시는 물론 행정중심도시에 가깝게 결정이 되어도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만일 위헌시비가 일단락된다 하더라도 대규모 정부부처의 이전에 대해 국정효율성의 저하, 막대한 이전비용으로 인한 경제난 가중, 통일 후 결정 등 온갖 이유를 달고 중앙언론들과 연대해서 예전보다 더 큰 반발과 저항을 일으킬 것이 불보듯 뻔하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특위의 최종안 마련은 신행정수도 문제해결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또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이번 만큼은 안이하게 대처해서는 절대 안된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둘러싼 제반 환경이 위헌판결 이후 크게 개선되지 않은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야 의원들이 대안마련에 앞서 헌재에 의해 실추된 입법부의 권위와 책임을 회복해야 한다는 절실함에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헌재의 결정문을 편협하게 유권해석하려 든다면 국회의 존재이유는 사라진다.
다음, 정부와 집권여당은 신행정수도건설의 의지와 원칙을 분명히 견지하고, 이를 관철할 수 있도록 국정운영의 틀과 방식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
끝으로 야당은 국가의 백년대계 차원에서 수도권의 과밀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이 절체절명의 국정과제임을 인정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가장 실효성 있는 대안인 신행정수도 건설에 적극 동참해 주기를 재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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