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한 가족이 낚시를 하고 있어 그 곁으로 다가가자 열 살배기 예쁘고 어린 소녀가 나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건네주며 수줍어하였다. 곁에 있던 아이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부르스 리”,“부르스 리”라고 외쳐댔다. 나는 올라가지 않는 다리로 발차기를 해보이며 바로 내가 “부르스 리”라고 하자 온 가족이 깔깔대며 즐거워하였다. 이스탄불은 그렇게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며칠 후 나는 트로이 유적지를 둘러보고 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밤늦게 도심부근의 허름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 하면서 이것저것 짐을 정리해놓고 자리에 누우니 여정이 피곤했는지 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뒤척이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순간, 몸이 허공으로 불쑥 솟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내 몸이 이렇게 요동을 치는 것일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8층 창 밖으로 사람들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천둥치는 소리마냥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지진이었다. 아찔했다.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터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 무너져서 죽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이는 대로 짐을 들고 뛰쳐나갔다. 어떻게 8층에서 뛰어내려왔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참기 힘든 두려움은 여진이었다. 동이 틀 때까지 땅은 계속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며칠 후 한국으로 돌아와 1만 5000명 이상이 사망한 터키지진 소식을 접하면서 그 한 가운데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는 자신의 꿈을 일구기 위해 수없이 소망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때는 자신의 의지와 선택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주어진 길을 가는 때도 있다. 그 날 나는 그 길을 보았고 그것이 실로 큰 두려움이란 것도 알았다. 그때 내가 돌아오는 이스탄불 공항에서, 어서 빨리 내 나라로 돌아가면 좀더 조심하며 살고 나의 가족과 좋은 친구들을 더 많이 사랑하리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한동안 잊었었는데, 2005년 새해에는 다시 한번 그러해야겠다. 인도네시아 지진으로 희생당한 모든 사람들의 영령에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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