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성 교육문화부장 |
특히 올 한 해처럼 경기가 최악으로 치달아 대다수의 서민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버거울 뿐 아니라 내년 역시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땐 더더욱 그러하다. 어쩌면 정말 한해가 바뀌는 것인지 조차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올 한해는 모든 이에게 힘겹게 느껴진 한해였음이 분명하다.
최근 한 기업체 대표와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지역의 대표기업 CEO가 전망하는 내년도 실물경기에 대한 예측이 자못 궁금했다. 그러나 그 역시 다소 애매모호한 답변을 했다.
‘어느 국가든지 5년 이상 불황이 지속되면 국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폭동이 일어나기 마련이지요. 때문에 2~3년 이내에 경기가 회복된다고 밖에 다른 전망은 저 역시 내릴 수 없어요. 저 역시 점쟁이가 아닌 이상 족집게처럼 집어 낼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현재의 실물경기가 지역의 대표 기업 CEO 조차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말속에는 ‘국민이 지칠대로 지쳐 폭발 직전이나 돼야 경기부양책이라도 써서 경기를 되살릴 것 아니냐’는 묘한 뉘앙스마저 담겨있었다.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4% 이하로 예측되고 있으니 하루만 지나면 새해가 밝아온다고 한들 서민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최근 교수신문이 올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뽑은 단어가 ‘당동벌이(黨同伐異)’다.
지난해 ‘우왕좌왕(右往左往)’,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에 이어 올해는 끼리끼리 무리 지어 다른 무리들을 공격하는데 허송세월을 보내는 행태를 비꼰 말이 서민들에겐 생소하기 짝이 없는 ‘당동벌이’인 것이다. 이 단어를 뽑은 이면에는 암울한 경제상황까지 반영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2005년이다. ‘당동벌이’의 주인공들에게 부탁 한마디만 하자. 2004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도 떼지어 다니며 다른 무리들을 고사(枯死) 시킬 술수나 찾지 말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일찍 집에 들어가 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는지. 가만히 누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노라면 삶에 지친 서민들의 아우성이 우렁우렁 들려올 것이고 그때 쯤이면 ‘당동벌이’의 주인공들이 왜 옛날옛적 코미디 보다도 더 저질스럽게 패러디돼 가는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도 새해 아침이면 서민의 희망을 담으려는 양심의 소리를 잠시나마 가슴에 담고 한해를 시작하지 않겠는가.
모쪼록 2005년 새해에는 삶에 지친 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정치에 희망을 담자. 내년 세밑에는 ‘당동벌이’라는 부정적 단어가 아닌 따뜻하고 희망 담긴 사자성어가 그들에게 훈장처럼 주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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