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칼럼]자그마한 온정, 행복 바이러스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상아탑칼럼]자그마한 온정, 행복 바이러스

  • 승인 2004-12-29 00:00
  • 김차종 한밭대 정보통신컴퓨터공학부 교수김차종 한밭대 정보통신컴퓨터공학부 교수
얼마 전 교통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어느 기사의 택시를 탄 적이 있다. 올 해는 별로 연말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며, 경제가 힘든 것도 그렇고 사람들의 마음도 삭막해진 것 같다고 손님인 나에게 말문을 열어왔다. 그래도 종종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기운이 난다며 어떤 승객 이야기를 하는 기사의 주름진 옆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날, 택시 기사는 아침 바쁜 출근시간에 한 여자 손님을 태우고 왕복 4차선의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언덕의 경사진 길 한가운데에 양쪽에서 달려오는 차들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고 서있는 보행자가 한 사람 있더라는 것이다. 반신불수로 혼자서는 길을 건너기가 힘겨워 보이는 그 노인의 불안한 모습을 본 승객이 급히 택시를 세워달라고 하더니 미처 말 할 틈도 없이 문을 열고 내려서는 달려오는 차들을 피해 노인에게 다가가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부축해 주더라는 것이었다.

다시 그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로 향하며 ‘바삐 가셔야 할 시간인데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길을 건널 수 없을 것 같아 차를 세우라고 했다’며 별일 아니란 듯 맑은 표정으로 말하더라는 것이다. 승객의 마음씨가 너무 곱고 아름다워 택시요금 2800원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기사의 얼굴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따스함이 묻어나는 것을 보았다.

연말이 다가오면 해마다 각종 방송 매체에서 다루는 소재들이 있다. 특히 올해는 IMF 때처럼,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도 더 버거운 실물경제난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사연이 많다. 비록 각종 경제지표가 아니라하더라도 식당가와 거리의 썰렁함이나 택시기사들의 고단한 음색만으로도 충분히 힘겨움이 느껴진다. 복지 기관에 후원금이 줄었다거나 노숙자가 더 늘었다는 등의 뉴스는 일면 예견되는 것이지만 유독 금년에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목숨까지도 저버리는 안타까운 뉴스가 많았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너나없이 어려운 이 때에 물질적으로 누구를 도와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연말이 다가올 때엔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기대하는 각종 단체의 전화를 종종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매번 모두 승낙할 수 없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도 한편으론 선행의 실적부로 대신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는 부끄럽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이제 금년도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따뜻한 손길이 더욱 절실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연말연시에만 온정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며 이 때에만 사랑을 베풀 것이 아닐 것이다.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바라는 요청에 흔쾌히 응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평소에 베푸는 자그마한 온정으로도 얼마든지 풋풋한 이웃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네티즌들이 뽑은 올해의 선행 인물로, 지난 10월 자신이 일하고 있는 가게(제과점) 앞을 지나던 1급 장애인에게 빵을 손수 먹여줬던 여점원이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처음 그 기사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을 때 여점원은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기사화 된다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 생각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그러한 행동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꾸준하고 연속적인 도움은 아니지만 어떤 찰나의 선행, 그로 인해 또 다른 선행을 낳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훈훈함 이상의 그 무엇이, 어쩌면 기부금이나 후원금보다 더 값진 의미가 아닐까.

새해에는 이 작은 온정의 행복 바이러스들이 우리나라 이곳저곳에서 자주 발견되고 파장처럼 더해져, 모두가 행복해 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2.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3.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4.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5.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헤드라인 뉴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아침밥 안 먹는 중·고생들… 대전 45% 달해 ‘전국 최다’

대전지역 청소년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학생들의 건강 증진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대전교육청은 바른 식생활 교육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6일 교육부 2024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아침식사 결식률은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전국 800개 표본학교의 중·고등학생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흡연, 음주, 식생활, 정신건강 등에 대해 자기기입식 온라인조사를 통해 진행됐다. 대전지역 학생들의 아침..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