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택시 기사는 아침 바쁜 출근시간에 한 여자 손님을 태우고 왕복 4차선의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언덕의 경사진 길 한가운데에 양쪽에서 달려오는 차들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고 서있는 보행자가 한 사람 있더라는 것이다. 반신불수로 혼자서는 길을 건너기가 힘겨워 보이는 그 노인의 불안한 모습을 본 승객이 급히 택시를 세워달라고 하더니 미처 말 할 틈도 없이 문을 열고 내려서는 달려오는 차들을 피해 노인에게 다가가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부축해 주더라는 것이었다.
다시 그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로 향하며 ‘바삐 가셔야 할 시간인데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길을 건널 수 없을 것 같아 차를 세우라고 했다’며 별일 아니란 듯 맑은 표정으로 말하더라는 것이다. 승객의 마음씨가 너무 곱고 아름다워 택시요금 2800원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기사의 얼굴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따스함이 묻어나는 것을 보았다.
연말이 다가오면 해마다 각종 방송 매체에서 다루는 소재들이 있다. 특히 올해는 IMF 때처럼,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도 더 버거운 실물경제난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사연이 많다. 비록 각종 경제지표가 아니라하더라도 식당가와 거리의 썰렁함이나 택시기사들의 고단한 음색만으로도 충분히 힘겨움이 느껴진다. 복지 기관에 후원금이 줄었다거나 노숙자가 더 늘었다는 등의 뉴스는 일면 예견되는 것이지만 유독 금년에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목숨까지도 저버리는 안타까운 뉴스가 많았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너나없이 어려운 이 때에 물질적으로 누구를 도와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연말이 다가올 때엔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기대하는 각종 단체의 전화를 종종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매번 모두 승낙할 수 없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도 한편으론 선행의 실적부로 대신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는 부끄럽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이제 금년도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따뜻한 손길이 더욱 절실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연말연시에만 온정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며 이 때에만 사랑을 베풀 것이 아닐 것이다.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바라는 요청에 흔쾌히 응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평소에 베푸는 자그마한 온정으로도 얼마든지 풋풋한 이웃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네티즌들이 뽑은 올해의 선행 인물로, 지난 10월 자신이 일하고 있는 가게(제과점) 앞을 지나던 1급 장애인에게 빵을 손수 먹여줬던 여점원이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처음 그 기사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을 때 여점원은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기사화 된다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 생각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그러한 행동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꾸준하고 연속적인 도움은 아니지만 어떤 찰나의 선행, 그로 인해 또 다른 선행을 낳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훈훈함 이상의 그 무엇이, 어쩌면 기부금이나 후원금보다 더 값진 의미가 아닐까.
새해에는 이 작은 온정의 행복 바이러스들이 우리나라 이곳저곳에서 자주 발견되고 파장처럼 더해져, 모두가 행복해 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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