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규 편집국 부국장 |
묻고 답할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충청인들에게 2004년은 정말 떠올리기 싶지 않은 해다. 잊을 수 있다면, 아니 기억의 편린을 뽑아낼 수 만 있다면 송두리째 지워버리고 싶다. 그래서 충청인들이 보내는 이 해는 송년이 아닌 망년임을 주저하지 않는다. 되도록 이면 빨리 2004년을 역사의 뒤안에 묶어두고 희망찬 새해를 맞고 싶을 뿐이다.
갑신년을 맞은 연초만해도 충청권은 환희, 비전, 밝은 미래, 희망 등 장밋빛 수사로 가득했다. 1년여 전으로 되돌아가 본보 1면을 보면 더욱 감회가 새롭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충청권의 새시대가 시작됐다. 본보는 이를 금강시대의 도래요, 중도(中都)시대의 개막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물론 그 중핵에는 신행정수도가 들어설 충청권과 충청인들이 우뚝 서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충청인들은 한반도 새역사 창조의 주인공 답게 마음자세를 가다듭자’고 피력하고 있다. 이는 비단 본보만의 주장이 아니다. 다른 지방신문과 방송들도 기획기사, 칼럼, 연재 시리즈를 통해 ‘국가의 천년대계가 충청권에 달려 있다’고 선언했다. 어디 언론사 뿐이랴. 충남도를 비롯한 충청권의 3개 시·도, 시·군·구도 새해설계나 신년사를 통해 ‘신행정수도시대를 제대로 맞이하자’고 다짐하고 나섰다.
이같은 분위기는 8월 11일 신행정수도의 입지가 연기·공주지역으로 확정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모두가 잘사는 나라 ‘금강의 기적’이 현실로 라는 구호아래 연기·공주에 ‘꿈의 도시’를 만들자고 목청을 북돋운게 사실이다.
하지만 변화를 원치 않는 관습의 저주인가. 충청인의 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닌 밤의 홍두깨지. 헌법재판소는 10월 21일 신행정수도 특별법을 위헌으로 결정, 충청권의 염원을 일장춘몽으로 몰고갔다. 그것도 생뚱맞게 관습헌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발목을 잡았다.
그 이후의 상황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일순간에 충청권은 ‘절망’이라는 흑사병에 감염됐고 허탈이라는 수렁에 빠져들었다. 그것도 잠시, 절망은 분노로 바뀌었고 그 분노는 충청권을 뛰어넘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하루가 멀다하고 규탄대회와 궐기대회가 이어졌고 그때마다 정부와 정치권, 헌판재판소, 그리고 일부 중앙언론에 대한 피토하는 성토가 이어졌다. 위헌판결로 거품이 된 신행정수도 건설은 국가 천년대계로 중단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 주된 목소리다.
이틀 있으면 을유년 새해가 밝는다. 때맞춰 정부는 지난 27일 신행정수도 대안으로 ‘행정특별시’,‘행정중심도시’ 등 2개안을 유력안으로 ‘교육과학연구도시’를 보통안으로 국회에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가 충청인들이 바라는 신행정수도의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이미 바이블 같은 이야기 지만 신행정수도 건설이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을 해소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에 있다면 원안대로 추진돼야 한다.
그 길만이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데다 끝없이 추락한 충청권의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유사이래 한마음으로 결집된 충청도는 이제 ‘멍청도’, ‘핫바지’라는 오명을 관습이라는 갑옷에 넣어 박물관에 영원이 보관할 참이다. 내년초에 가름마될 신행정수도 대안에 충청권의 몰입된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위기는 기회로 다가오고 도전에 대한 응전은 충청권에 던져진 을유년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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