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용 부장 |
오너가 권력에 들어가는 순간 그 신문은 제 기능을 못할 것이 분명하다. 지난주 홍회장의 주미대사행 소식을 차 안 라디오에서 듣고 그 신문 기자들 입장이 먼저 떠올랐다. “참 당혹스럽겠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쳤다. 그 뒤 중앙일보의 한 논설위원이 사주가 주미대사로 가는 문제를 칼럼으로 다뤄, 당혹감을 표하면서 걱정하는 내용을 전했다. 그러나 마지막엔 사주에게 “큰 경험을 쌓고 다시 발행인으로 돌아올 것”을 기원해야만 했다. 펜이 굽어선 안 된다면서도 벌써 굽어 있다.
그러나 그게 사람이다. 자기 월급 주고 목줄 쥔 사람에겐 할 말을 다 못한다. 기자라고 대수인가? 그 정도의 글을 쓰는 데도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사주가 모시기로 한 권력에 대해선 다를 수 있겠는가? 가끔 ‘용기’를 낼 수는 있어도 그 신문 본래 내왔던 목소리와 그 톤(강도)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홍회장이 공무원 생활을 하는 한 그 신문사 기자들은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권력에 민감한 사안에 관한 한 말더듬이가 될 수밖에 없다.
혹시 ‘편집권 독립 방안’을 운운하는 자가 있다면 헛된 말이라는 것을 그 자신도 잘 알 것이다. 해법이 있다면 홍회장이 이번에 신문사에서 아예 손을 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사회적 논란조차 안 되는 형국이고, 그도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문제를 거꾸로 볼 수도 있다. ‘권력 밑으로 들어간 언론’의 문제가 아니라 ‘유력 신문사를 끌어들여야 할 만큼 지쳐있는 권력’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안 되는 일이고 또 위험한 일이다. 현정부는 3개 신문 시장 점유율이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언론 권력의 편중을 막겠다는 취지 아니겠는가? 또 노무현대통령 자신이 수시로 “권력과 언론은 너무 친해져서는 안 된다”고 외쳐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오히려 언론사와 ‘합방’을 꾸미려 하고 있으니 대통령의 식언이 지나치다.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뒤집을 만한 명분과 이유는 있다고 한다. 대미 관계가 중요한 시기에 홍회장이 누구보다 적임(適任)이고 꼭 필요한 인재(人才)라는 것이다. 사람 쓸 때는 원수(怨讐)도 쓴다는 말도 있는데 권력이 언론 사주를 한번 불러들이는 게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시중엔 그런 반응도 있는 듯하다. 그럴 수 있다. 국가의 명운이 백척간두에 섰다면 모든 언론사가 권력에 봉사하고 주미 대사가 아니라 대사관 문지기가 된들 누가 시비하겠는가?
문제는 홍회장만한 사람이 정말 없고, 또 작금 노무현 정부의 대미(對美) 관계가 그만큼 절박한 상황인가 하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선 알길 없으나, 후자의 경우 그렇다면 노대통령이 얼마 전 LA에서 제법 세게 나갔던 대미(對美) ‘자주적 발언’은 무엇인가?
설사 절박하지는 않더라도 현 정권에게 홍회장은 대미용 뿐 아니라 보수세력에 대한 외연 확대 등 국내(정치)용으로도 요긴하게 쓸만한 카드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오는 폐단은 너무 크고 많다. 권-언 유착의 위험성이 도사리게 되고, 적어도 한 유력 신문사가 정부기관지 같은 신세로 전락한다. 미국 정부와 친하다는 삼성까지 포함시키는 ‘커넥션’으로 본다면 권(權)-금(金)-언(言)의 유착일 수도 있다. 모두 노무현정부가 어제까지 가장 비판하던 일이다. 이런 폐단과 의혹을 감수하고서라도 한 언론 사주를 임관시켜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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