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수십 년째 맞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매년 한 해를 접을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 있다. 올해는 어떻게 지냈는가? 지나온 일년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는 비단 필자만의 버릇은 아닐 것이다.
모든 이들이 한 해를 보내면서 뇌뢰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 ‘다사다난(多事多難)’일 것이다. 갑신년 2004년을 되돌아 보건대, 역시 다사다난이란 문구외에 더 이상 적확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 있으면 많은 언론들이 앞다퉈 올해의 국·내외 10대 뉴스로 한 해를 정리할 것이다. 각 언론사에서 정리해 발표하는 종합 10대 뉴스와 분야별 10대 뉴스는 지난 1년을 최종 마무리 하는 잣대가 되곤 한다.
언론이 정리하기 전에 필자의 중심에서 올 한해를 되짚어 보고 싶다.
먼저 정치권에서 벌어진 사건을 짚어보자. 헌재의 탄핵정국과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로 촉발된 관습헌법이 한동안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들더니, 때 아닌 색깔논쟁으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사회면을 장식한 각종 뉴스도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새삼스런 병역비리가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병명인 ‘사구체 신염’이 히트 아닌 히트가 됐다. 병역비리가 터지기 전에는 이 병명을 알고 있었던 국민들은 과연 얼마나 됐을까? 성매매 특별법 또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기세등등하게 출발했던 당시와 작금의 분위기를 비교해 본다면 체감의 바로미터가 변하고 있음을 누구든지 실감할 것이다.
막판에 불어 닥친 수능시험 부정사건은 우리 기성세대들을 아연케 하고도 남았다. 휴대폰 하면 걸고 받기만 할 줄 하는 우리 세대와는 다른 e-세대와의 이질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했다. 김선일씨 피살사건과 무고한 21명의 생명을 무참히 빼앗은 유영철 사건은 우리를 다시 한번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다.
더욱이 장기적인 내수 경기침체는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청년실업과 대졸자 취업난은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한창 일하는 맛에 푹빠져야 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실은 정말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래도 한편으로 이처럼 우울한 일만 있었던 2004년만은 아니었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복제’ 성공은 전 세계 올해의 획기적인 연구 성과에서 3위로 선정될 정도로 대한민국의 기초과학 수준을 인정받은 쾌거였다. 또 세계에서 4번째로 시속 350km를 넘어서는 한국형 고속철 제작과 마의 100인치 벽을 깬 102인치 PDP 개발은 움츠렸던 우리의 어깨를 펴게 했다.
더욱 더 이어가야 할 과제도 있다. 중국에서 촉발된 한류열풍이 일본에서 방영된 겨울연가에 힘입어 ‘욘사마’ 열풍으로 이어져 한·일간 관계정립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촉발된 재정립 운동은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 것들은 반짝 이슈로 끝내지 말고 국가·사회적 지원과 하나됨으로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갑신년이 가고 을유년이 오고 있다. 다가오는 닭띠 해에는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우렁찬 목청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일들은 단번에 떨쳐버려 즐거움과 희망만이 함께 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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