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강동석 건교부장관이나 최병선 신행정수도후속대책위원장이 “대안을 마련 중이며 최종결정되면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믿기 어렵다. “행정수도 이전은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걱정하지 말라”는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국회법에 따라 정식으로 통과된 법도 헌재의 ‘관습헌법’ 한 마디에 뒤집히는 판에, 최고 책임자도 아닌 이들의 말이 미더울리 없다.
무엇보다 지금 사태의 첫번째 책임에서 대통령은 벗어날 수 없다.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을 가장 먼저 입에 올린 이가 누군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수도권의 집중과 비대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수도권 집중억제와 지역경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행정수도 건설에 대한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한 건 2002년 9월 민주당 선거대책위 출범식 때였다. 여기에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올 것”이라고 한 이는 당시 후보였던 대통령 자신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여야나 지역을 넘어 모두의 이익”(2003년 7월 신행정수도와 21세기 국가발전전략을 주제로한 국정회의)이라면서 “신행정수도특별법은 국가균형발전의 실질적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게될 매우 중요한 입법 사안”(국회의장 및 의원들에게 보낸 대국회 협조 서한)이라고 특별법 통과에 앞서 국회에 협조를 구한 이도 대통령이었다.
행정수도 건설이 정권의 명운을 건 절체절명의 국가정책이라던 대통령이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 입을 다물고 있는 건, 전라도말로 ‘껄쩍지근’하다. 여론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건가.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 행정수도 이전이 국가균형발전에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된 죽이 뜸을 더 들인다고 밥이 되진 않는다. 밥을 먹고자 한다면 다시 쌀을 씻고 새로 밥을 짓는 게 옳다.
대통령의 침묵은 충청민들에게 도리가 아니다. 충청민들은 벌써 두달이 넘게 머리에 띠를 두르고 차가운 거리에서 수도이전 사수를 외치고 있다. 그 외침에 메아리도 없이 해를 그냥 보내게 할 수 없다. 그러고도 신년사에 너나없이 새해 소망을 이루라고 말하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할 수는 더더욱 없다. 충청민의 외침에 답해야 한다.
대통령이 말하라. 더도 말고 새해에 품을 희망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다. 바라건대, 그 말은 개헌을 하고 국민투표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원안대로 밀고 가겠다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헌법개정이나 국민투표의 현실적 어려움은 알지만 적어로 이를 배수진으로 삼아 추진하겠다는 결연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선구자도 아닌, 후구자(後驅者)도 못되는 수구(守舊)에 우이(牛耳)잡힌 느낌이다. 큰 줄기로 보면 역사는 제 곬을 찾아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을 지탱해 온 것은 국민들의 깨인 눈과 힘이었다. 위정자는 어떻게 그것에 대응하고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2004년 역사를 ‘후세의 사필‘이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염두에 두고, 한시적 임기만 볼 게 아니라, 민족의 미래를 겨냥해 시계(視界)를 활짝 넓혀야 한다. 눈에 보이는 그것, 그걸 들려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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