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것의 존재로 인해 우리네 12월은 그나마 의미 있는 무게 중심을 잡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는 우리의 인간성이 아직 메마르지 않았음을, 우리 사회에도 한 줌 희망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1891년 성탄이 가까워 오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선냄비는 그 첫 종소리를 울리게 되었다.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런 재난을 당하여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 된 1000여 명의 사람들을 먹여야 했던 한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 정위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옛날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누군가가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그는 오클랜드 부두로 나아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다리를 놓아 거리에 내걸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다. “이 국솥을 끊게 합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 사관이 서울의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불우 이웃돕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가 IMF 체제하에서 지독한 어려움을 겪던 시절에 자선냄비에 모인 총액이 오히려 전해에 비해 늘어났다는 기적 같은 일화가 생각난다. 십시일반 서로 도우며 훈훈한 정을 나누는 우리 국민의 미덕이 참으로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지난 9일 부산에서는 구세군 자선냄비에 현금 대신 교통카드로 결제하는 디지털 구세군 냄비가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에게는 종교를 초월하여 선한 양심의 요구에 응할 책임이 있다. 올해도 사랑의 종소리가 사람들의 마음마다 울려 빨간 자선냄비가 펄펄 끓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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