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집권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 사회의 풍토상 동네수준의 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은 무척 적은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사실상 동네에 대한 중요성은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의 동네는 사회적?공간적으로 통합된 게마인샤프트적 지역사회의 모습은 상실했다 할지라도, 여전히 도시생활의 스트레스와 긴장으로부터 ‘지속적인 회복작업’을 위한 장소로서, 이웃과의 꾸미지 않은 일상적인 접촉을 통해 ‘느슨한 유대’가 생성되고 유지되는 장소로서, 그리고 자신이 거기에 살고 있다는 정체성을 상징화하는 중요한 생활의 장소로서 여전히 유용한 초점을 제공해준다.
더욱이 최근 여러 선진국에서는 빈곤, 실업, 범죄, 환경 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정부나 시장이 아닌 동네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역량구축을 통해 해결하려는 ‘제3방식’(the third way)의 많은 실험들이 수행되어지고 있다. 미국·영국의 지역사회형성 및 동네재생, 일본의 ‘마치추쿠리’(마을 만들기) 등이 그 예이다. 이는 동네수준의 다양한 느슨한 유대와 동네조직의 참여가 신뢰, 상호부조 및 공동체의식과 같은 규범을 조장할 수 있고, 이러한 규범들이 지역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 꼭 필요한 자원이라는 면에서 동네는 제3방식의 비공식적 자원의 보고(寶庫)로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를 단위로 한 정책실험은 시민참여의 수요측면에서도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집단행동의 딜레마(collective action dilemma)의 상황에서 보여주듯이 여러 사람이 참여해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무임승차유인으로 인해 참여를 기피하게 됨으로써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당연히 무임승차행위를 모니터링하고 제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구성원의 참여는 높아지게 된다. 이러한 가능성은 광역보다는 적은 규모의 공간적 단위에서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동네문제와 같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시민참여의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좀더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중앙 또는 광역으로만 향해 있는 정치적·사회적 관심사를 벗어나 우리가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주변으로부터 지역사회를 만들어나가려는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최근 행정동을 단위로 하여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조장하고 복지사각지대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전광역시의 ‘복지만두레사업’은 이러한 관심과 노력의 중요한 예가 될 수 있다. 행정동 뿐만 아니라 좀더 작은 규모의 동네를 단위로 한 주민참여제도 및 프로그램의 마련을 통해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새로운 분권적·주민자치적 실험들이 과감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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