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그뿐인가. ‘Hi! Seoul’에 뒤질세라 ‘It's Daejeon’이 버젓이 자리를 잡아가더니 어느새 구청 건물의 이마에 ‘Let's Go Together’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앞서서 대학들은 벌써부터 ‘Move on 무슨 대학교’ ‘Yes 어떤 대학교’ 식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아예 ‘인터내셔널 유니버시티 00대학교’라며 외국인의 혀와 입술을 빌려 당당히 광고를 하고 있다.
하긴 이런 정도쯤이야 이미 예견된 것이었지만, 한국방송에서조차 이 같은 잘못을 똑같이 저지르고 있다. 퀴즈 대한민국이란 프로그램에서 화면엔 영문이 뜨면서 프로그램 명을 알리는 목소리가 등장하는데 이때 외국인이 ‘데·한·민·국’이라며 어설프게 발음을 하며 방송이 시작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어떤가. 놀라움을 드러낼 때 ‘와우’ 하며 탄성을 지르고 “내가 뭘?”이란 표시로 양쪽 어깨를 살짝 들어올리며 다른 나라 사람의 몸짓까지 따라가는 지경이다. 그러니 우리말을 사랑하는 모임을 끝내고 뒤풀이를 할 때 ‘원 샷’이라고 외쳐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러면 많은 이들은 곰팡내가 나는 골방에서 어서 나와 세계로 눈을 돌리고 국제로 뻗어 나가라며 입을 삐죽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결코 영어를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영문으로 된 책을 술술 읽어야 하고 외국인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국어 선생도 영어로 강의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우리 나라 사람끼리 얘기하는 데 왜 영어를 여기저기에 섞어 쓰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쓰고 있는 외래어까지 버리자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영어 문장까지 통째로 가져다 써야 직성이 풀리는 세태를 걱정하는 것뿐이다.
말속엔 겨레의 얼이 녹아 있다. 더 이상 외국어 나부랭이를 함부로 써 국어를 흠집 내고 민족 얼을 깎아 내리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훨훨 날아다니는 영어에 점점 주눅이 들어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우리말을 우리 겨레가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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