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행위에 대한 판단기준이 선악, 또는 진실, 정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힘과 상황논리에 있다. 따라서 절대권력 앞에서의 정당성 시비는 무의미하다.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집단이 있다. 우리는 이런 집단에게 ‘철밥통’ 또는 ‘철밥그릇’이 있음을 잘 안다. 또한 이들의 ‘철밥통’과 절대권력, 그리고 무오류 사이에는 유기적인 상보 관계가 있음을 안다. 이런 집단은 몇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패거리 의식’이 있다. 이른바 ‘동업자 정신’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절대권력을 상호 보호해주고 지속시켜주는 절대적 힘이다.
둘째,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이들은 기득권과 이로움이 보장받는 리그만 치른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리그가 있으나,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리그만이 옳고 가치 있다고 여기며 고집한다.
셋째, 비굴함까지도 기꺼이 절대권력을 지키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들에게는 명명백백함이 무가치하다.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고 뒷날을 준비할지언정 명백함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넷째, 때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옹색함도 있고, 때로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조악한 계책도 쓴다. 그들은 이를 자존심 지키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다섯째, 부끄러움을 느낄지언정 이를 치부인 양 감추고, 절대 시인하거나 사과하지는 않는다. 이는 잘못에 대한 본질적 반성이 아닌, 잘못을 들킨 것에 대한 조심성 부족을 반성한다는 뜻이다.
이 다섯 가지 속성은 분명 힘을 앞세우는 ‘깡패 집단’에서나 있을 법한 것이다. 그러나 깡패 집단에게는 이런 속성이 필요 없다. 그들의 힘은 물리력을 뜻하는 것이므로 ‘단순 명쾌’하다. 도전도 응전도 명확하고, 이 결과에 대한 평가도 명확하다. 이런 속성은 ‘양아치 집단’에서 작용한다. 건달과 깡패와 양아치가 서로 다른 이유다.
이 시대, 분명한 것은 자본도 힘이고, 지식도 힘이라는 것이다. 자본의 힘은 셈이 가능하나, 지식의 힘은 광대무변하다. 그래서 지식의 힘은 물리력을 넘어서는 절대권력을 갖는다. 펜이 칼보다 강한 이유다.
우리 세상에는 아직도 ‘썩어도 준치’라는 존두의식(尊頭意識)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집단이 있다. 그러나 썩은 것은 준치로서의 가치가 없다. 이를 우기면 시대로부터 낙오되는 것이고, 정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며, 급기야 자멸하고 마는 것이다. 세상에는 반드시 옳고 그름이 있는 법이다. 힘의 논리로 상황논리로 잠시 이를 뒤집을 수는 있으나, 영구히 뒤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은 아는 자가 만들기도 하지만, 또 아는 자가 망치기도 한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옛말이 이를 꼬집어 한 말이 아닌가. 공의(公義)를 생각하고, 공익을 생각하고, 정의를 생각하고, 역사를 생각하라. 아직도 절대권력을 믿고 무오류를 받드는 자들은 이제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뜻을 새기라. 세상의 패러다임은 이미 바뀌었고, 그대들의 절대권력도 무오류도, 그리고 철밥통도 이제는 그 쓰임이 끝났다.
현실이 아무리 권력과 이해관계를 잣대 삼아 슬픔과 기쁨을 나눈다고 하나, 이는 결코 의롭지도 영원하지도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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