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안눈시아따’ 수녀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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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안눈시아따’ 수녀의 믿음

  • 승인 2004-12-15 00:00
  • 최상수 편집부국장최상수 편집부국장
▲  최상수 부국장
▲ 최상수 부국장
1966년 여름방학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날. 성모여중 초대교장이었던 ‘박기주 안눈시아따’ 수녀는 전체교직원회의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언으로 교직원들을 깜짝 놀라게했다.

앞으로 모든 시험을 무감독으로 치르자는 것이 그것이었다. 당시 한국의 교육현실로써는 폭탄선언에 다름아닐 정도로 획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예상대로 대부분 교직원들은 ‘그것은 무모하고 불가능한 일’이라며 펄쩍 뛰었다.

그렇다고 종교적 믿음에 바탕을 둔 학교에서 정직을 배우고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학생들 스스로 무감독시험을 치르는 것이라는 그녀의 교육신념은 변할 수 없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안눈시아따 수녀는 시험을 치르는 당사자는 학생들이며 이들에게 묻겠노라며 이때부터 직접 교실을 돌았다.

“영국 최고의 명문사학 이튼스쿨은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모든 시험을 무감독으로 치릅니다. 우리도 바로 그 성스런일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여러분이 져야 합니다. 1주일간의 시간을 주겠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의논하고 결정하기 바랍니다.” 최후 통첩을 마친 교장 수녀는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로 예상보다 빨리 내려졌다. 3일후 학생들이 교장수녀를 찾아온 것이다. “이튼스쿨의 학생들이 할 수 있다면 저희도 할 수 있습니다. 교장수녀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라는 답을 갖고. 교장수녀와 학생들의 믿음이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3년뒤 개교한 대전성모여고의 36년 무감독시험이란 찬란한 금자탑은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비록 매년 일부 학생들의 부정행위로 인한 부작용은 있지만 ‘무감독시험’은 이제 명실공히 성모여고 교육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나아가 정직과 양심이 가장 중요한 교육본질이란 교장수녀의 교육자적 신념과 그 믿음을 실천한 학생들이 만들어낸 모범적 교육성공 사례로의 승화가 아닐 수 없다.

‘敎’가 뜻하는 학력신장과 ‘育’이 상징하는 인성교육, 흔히 이 둘은 교육의 양대 축으로 불린다. 때문에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이 둘의 이상적인 조화를 꿈꾸며 전 교육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육 현실은 그렇지 못한게 사실이다. 한마디로 ‘敎’가 ‘育’보다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전대미문의 수능시험 부정사건은 그 단적인 예다.

성적·학벌지상주의, 점수 위주의 잘못된 교육정책, 인성교육의 마비로 인한 그릇된 사회풍조가 빚어낸 합작품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성모여고의 36년 무감독시험이란 성과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교육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반증이기도하다.

‘敎’에 편중되지 않고 자율과 양심, 즉 ‘育’에 근거한 교육이었기에 더욱 소중하고 값져 보인다. 물론 그 이면엔 안눈시아따 수녀라는 참교육자이자 독실한 종교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규율과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정직한 교육에 대한 신념이 투철한 인물이 바로 안눈시아따 수녀였다는 이애령(호노리나) 현 성모여고교장의 말에서 36년 무감독시험은 우연히 이루어진 성과가 아님을 짐작케 한다. 또한 어린 나이지만 뿌리치기 힘든 유혹을 떨쳐내고 양심을 실천한 대견한 학생들에게도 그 공의 일부가 당연히 돌아가야 한다.

모순 투성이의 시대, 인간교육의 실종시대에서 접하기 쉽지않은 성모여고의 이같은 수범사례를 보면서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설파한 경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운명은 화강암보다 견고하지만 인간의 양심은 운명보다도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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