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하고 있는 학습지와 다니고 있는 학원만으로도 아이가 버거워하는데 아무래도 과외까지는 무리가 아니겠느냐는 말에 아내는 손사래를 쳤다. 한 마디로 그 정도는 요즘 아이들에게 기본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잘 몰랐으나 학년이 높아지면서 사교육의 거대한 위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공교육의 기반마저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사교육 열풍’이 수그러들기는 커녕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남들도 시키면 나도 시킨다’는 빗나간 경쟁심리와 ‘학교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불안심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많은 교육전문가들은 직업에 귀천(貴賤)이 있다는 왜곡된 의식을 만들어낸 출세지상주의, 일정한 시스템을 거쳐야만 부와 권력에 동참하거나 세습할 수 있다는 학벌주의 등을 고질적인 교육병의 원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이같은 가치 전도(顚倒)의 이면에는 우리네만의 유별난 교육열이 자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찌됐든 권력이나 물질처럼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적 희소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사실상의 유일한 통로라고 할 수 있는 교육에 모든 것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물론 학부모들도 공교육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공교육이 사교육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고 믿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자녀의 성적이야 오르든 말든 무조건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시켜야만 안심할 수 있다는 ‘사교육 중독’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사교육 열풍의 최대 피해자는 뭐니 뭐니해도 아이들이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서도 5·6학년 쯤 되면 학교수업을 마치고 몇 군데 학원까지 거치다보면 밤 10시를 넘겨 귀가하기 일쑤라니 무슨 여가(餘暇)가 있겠는가?
굳이 과외가 필요하다면 다른 부모들처럼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아이의 등을 떠밀수도 있었으나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처지를 감안했을 때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공교육을 신뢰하고 소중히 여겨야할 처지임은 분명했으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처럼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아내의 생각을 설득할 명분도 마땅치 않았다.
이래저래 깊어가는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공교육에 대한 믿음이었다. 비록 내 자식이 조금 손해보는 일이 있더라도 학교를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고민은 이 땅에서 자식을 키우는 모든 부모라면 한번쯤은 겪어야할 통과의례인 듯 싶어 그 안타까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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