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박상배 정치부장 |
금년 초 17대 총선을 석달 앞두고 여야의 정국주도권 다툼이 갈수록 치열성을 더해갈 즈음 그가 국회에 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청문회’에 참고인 자격으로 불려나온 강 사장의 거침없는 발언과 호기는 좌충우돌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자신을 불러놓고 벌이는 여야의 소동이 더욱 한심해 보였던지 “회사 같았으면 모조리 해고감이야”라고 돌출발언을 내뱉었다. 국민의 대표라고 뽑아놓은 선량들의 행동과 수준이 고작 이 모양이니 나라꼴은 뭐가 되겠냐는 것이다. 강 사장 얘기는 한동안 객주집 화덕의 안줏꺼리로 서민들에게 회자됐다.
같은 시기 여야가 옥신각신 지엽적인 문제로 다툼을 벌이던 상황을 국회 본회의장 국무위원석에서 지켜보던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입가에 야릇한 웃음이 번졌다. “호호호 가히 코미디야, 코미디.” 웃음 섞인 독백을 되뇌던 표정을 지금껏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의 비소(鼻笑)속에는 손으로 입을 가릴 가치조차도 없다는 듯 했다.
‘강효리’(탤런트 이효리의 합성)로 불릴 만큼 미모와 당돌함이 상당한 화제를 몰고 다녔던 그의 상품가치를 총선에 활용하려는 여권지도부의 강한 프러포즈를 끝내 매몰차게 뿌리친 이유도 이런 혐오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국민이 뽑은 대표자가 “모가지감”소리나 듣고, 광대 노릇이나 하고 있다는 모멸찬 빈축에 자성은커녕, “국회 모독발언”이란 즉각적인 대응은 더 큰 개그요 코미디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쯤 이들에 대한 유권자의 만족도는 얼마나 될까. 기존 정치권에 대해 폭넓게 깔린 불신과 불평불만을 투표를 통해 쓸어 낸지 시간이 꽤 흘렀다. 어느덧 각종 연말결산 시리즈가 쏟아질 시점에 와 있고, 첫 정기국회도 폐회됐다.
등원한지 이제 겨우 반년밖에 안된 그들에게 성급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가혹한 일면은 있다. 하지만 고유의 입법기능과 정부예산 심의기능, 국정감사라는 감시감독기능 등 포괄적인 의원직능을 십분 발휘해 볼 시기도 이때뿐이라면 기회는 그리 많지가 않다. 덧없는 세월이 낙화유수와 같기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간절한 지위에 오를수록 더욱 절실하다.
이런 막중한 역할에 헌정 초유의 187명(전체299석)이 초선이고 개혁을 표방한 집권여당이 16년만에 과반의석을 차지했으니,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도 충분히 반영된 셈이다.하지만 새롭게 보여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갈아본들 별수 없다”는 생각에 더 큰 실망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지 않은가.
‘실사구시’(實事求是)니, ‘실용정치’니 말로써 다하고, 날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박한 민생경제는 뒷전이다. 앞선 정권에서 “온기가 곧 윗목까지 도달할 테니 기다려달라”는 희망 ‘군불 메시지’ 조차 사라진지 오래고 절망 소리뿐이다. 이럴진대 국민적 관심사와는 무관한 소모적 정쟁에 배신과 분노만 차오르고 있다. 이제 “개혁이 밥 먹여 주냐, 제발 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절규에도 정치권은 시계를 마냥 거꾸로 돌리고 있다. 생산성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집단이라면 모조리 해고감이란 용기와 살벌한 일갈이 다시금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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