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프로코피에프가 스탈린 사망소식을 전화로 듣고 눈물을 흘린 사연 따위다 (물론 슬퍼서가 아니다). 지난 11월 모임에 불참하여 다음날 아무런 예비지식 없이 객석에 앉았는데, 친구가 설명하기를 2부에 연주될 엘가 작곡 ‘수수께끼’의 14개 변주곡은 작가의 주변 인물들을 묘사한 것이란다.
차례로 느낌을 메모해놓고 나중에 해설을 읽어보니 두세곡은 제대로(?) 맞추었다. 이처럼 처음 접하는 곡을 들으며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가 보는 것은 감상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자 ‘창조적 두뇌’ 개발로 이어지는 훌륭한 감성훈련이다.
며칠 뒤 같은 아트홀에서 김매자씨의 창작무용 ‘심청’ 공연이 있었다. 판소리의 마지막 가사(歌辭) “눈 떴다!” 는 외침은, 전통예술의 폭과 깊이에 필자가 새삼 느낀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먼저, 판소리의 창(唱)과 고수(鼓手)의 고장북 만으로 장내는 오페라처럼 소리로 가득 차고, 두 예인(藝人)을 잇는 추임새는 관객을 극적긴장으로 끌어들인다. 다음은 춤. 정밀(靜謐)한 정지동작과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역동적인 연결동작은, 탈춤으로부터 택견의 권법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이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백의를 두른 무용수 10여 명의 배치였다. 정지동작에서는 여백의 운치가 넘치는 한국화 류의 설치미술이요, 움직이면 병사들의 진(陣)을 연상케 한다. 관객석 뒤로부터 무대까지 휘돌아간 백색의 무대장치와 함께, 독창적이고 뛰어난 미장센의 완성이었다.
우리 문화자산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오랜 세월 가꾸지 못한 채 방치되었을 뿐이요, 한류 열풍은 숨어있던 저력이 얼핏 그 편린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창작무용극 ‘심청’처럼, 현대적인 감성훈련과 상상력 개발을 통하여 묻혀있던 흙 속의 옥과 흩어진 구슬을 닦고 꿰는 작업이 다양하게 진행되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는 단순히 우리 것에 대한 과시에 그치지 않고, 세계 문화예술에의 커다란 기여로 나타날 것이다.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은 바로 그러한 결실을 준비하는 기름진 농장의 하나로서 제 몫을 해야 하고, 또 분명히 해내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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