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서 조기(早期) 기상이 꼭 근면함과 부지런함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일찍 눈 떠봤자 신문을 읽거나 운동한답시고 아파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게 보통이다.
혹시나 하지만 오늘 받아 본 신문의 얼굴도 역시나 일그러져 있다. 수능 부정 등 성역처럼 여겨졌던 일들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찢어져버렸다. 제일 심각한 건 신뢰의 붕괴이다. 너무 넓게 확산된 국가적인 불신의 문제가 가장 두렵다.
그래도 어둠을 뚫어주는 건 겨울 날씨답지 않은 햇살이다. 요즘 날씨는 세상 돌아가는 것과는 전연 딴판이다. 일기 탓인지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 에어로빅 회원들의 음악 소리도 볼륨을 키워간다. 내복 바람으로 어지간히 뛰어 대지만, 역시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하면 그 축에 끼지도 못 한다.
날씨는 언제 또 변할지 모르지만, 늘 변함없이 아침을 깨워 주시는 분이 계시다. 아파트 청소를 맡으신 환경 미화원 할아버지이시다. 작은 휴지 하나까지 꼭꼭 쓰레기통에 쓸어 담으시는 영감님의 두터운 손을 보면, 그 분의 삶을 다시 생각케 된다. 자식들 다 여의살이까지 마쳤지만, 일이 좋아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최선을 다해 땀 흘리는 모습이 너무 향기로워 보인다.
올 겨울 따뜻할 것이란 일기예보를 처음 들었을 때도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청소하시는 영감님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요즘은 아예 세상의 복잡한 일까지 깨끗이 쓸어주셨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겨났다. 그래, 세상은 이런 분들의 땀이 모여서 움직여지는 건지도 모른다. 꼭 지위 높고 많이 배우고 돈 많은 분들만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닐 게다.
아직은 출근하지 않았지만, 저쪽 길모퉁이에서 오래도록 구두를 고치고 계신 아저씨의 얼굴도 맑기만 하다. 망가진 구두 하나를 그토록 소중히 깁고 매만지는 기름 묻은 손을 보면 가슴이 더워진다. 또 그 옆에 야채 몇 포기를 팔아달라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도 고와 보인다. “직접 농사 진 거라 다 돈사고 가야한다”는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삶의 여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분들에게 12월의 아침은 무슨 의미일까. 세상은 묵묵히 자신의 일만을 땀 흘려 하시는 분들의 편이 아닐까. 또 한장 남은 달력을 두고 우리는 요란을 떨게 된다. 다사다난, 아쉬움, 송구영신(送舊迎新). 이런 상투적인 단어들이 때를 기다린 듯 쏟아져 나온다.
줄 잇는 망년회, 송년회가 애꿎은 술만 축낸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시절을 맞기 위한 통상적인 절차이지만 올 연말만은 좀 다르게 보내보자. 소주 잔 수를 늘리기보다 의미 있는 세모(歲暮)를 만들어 가자.
무엇보다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이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소외된 이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진다. 고통을 나누고 분담하는 만큼 우리 사회는 밝아진다.
다음으로, 가족과 가정의 가치를 다시 일깨우자. 세상과 세월이 어수선하다고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사회 단위가 흔들려선 안 된다.
그리고, 새로운 꿈을 부지런히 가꾸어보자.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새 꿈을 꾸자. 새해를 맞으면서 꾸려면 이미 늦다. 지금이 새 꿈을 꿀 적기이다. 쓸데없이 마음의 나이만 늘리지 말고 제대로 된 꿈을 늘려보자.
한 해 끝마무리를 향해 마침표와 쉼표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오늘 아침 청소를 마치고 돌아가는 할아버지의 묵묵한 뒷모습을 보면서 새삼 세월과 삶의 의미를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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