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칼럼]휴대폰 원죄론과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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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휴대폰 원죄론과 수능

  • 승인 2004-12-08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  최충식 논설위원.
▲ 최충식 논설위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여니 네티즌들이 말을 걸어온다. “몰랐다고 울면 다행이지요…. 저번에 보니 어떤 부모, TV 나와서 한다는 소리가,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다 그러면서 크는 거 아니냐고, 당신들은 커닝 안 했냐고 되묻더군요.… 정말 욕 나오더군요.” 복숭아비 님이 흥분하는 이유를 이해한다.

네티즌 핵진주 님은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다고 푸념했다. 그렇다. 어지럼증 나게 빨리 변하고 있다. 멀쩡한 휴대폰을 구식으로 만드는 새 모델들로도 그걸 절감하는 중이다. 물론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연구랄 것도 없는 역사공부를 통해 늘 확인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뉴스나 뉴스밸류는 선사시대나 현대의 최첨단에서나 별 차이가 없으리라는 단서는 많다. 문명과 동떨어져 현존하는 부족의 생활상을 훔쳐보면 그들의 관심사는 오늘 우리와 놀랍게도 같다. 그 증거는 사회면 톱기사 감으로 손색없는 조상들의 뒷골목 풍경에서도 여실히 포착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비주류 인생들에 관심이 많다. “옛날에는 더했을 거예요.” 그래, 과거장에 힘센 무뢰배와 답안지 베끼는 노비가 들어가고 술장수가 들어가던 시절보다 사정이 나을 게 없다. 성모여고의 36년 무감독 시험은 아주 예외다. 인격과 이름을 걸고 전교생이 치른 실험적인 무감독 시험의 추억이 필자에게도 있다.

행복했을 것이다. 커닝해서 대학 간 친구에 대한 불미한 기억이 이내 덮어씌우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이제 와서 그 선량한 꽃집 아저씨 심기를 건드려본들 국가적으로 이득 될 게 전혀 없다고 본다. 그냥, 과거장으로 썼던 성균관 반수당에서 발견된 새끼줄이 든 대나무통(외부 작성한 답안지를 시험장 안에 들여보내기 위한 커닝도구)을 발견하고 하하 웃은 셈이나 치자.

그러자 ‘지적 절도 사건’에 대한 살인미소 님의 항변이 계속된다. “지금 웃대가리 중에 부정행위 있을지도…. 옛날에는 감시가 더 개판이었을 테니까…. “ 11년 전, 아르바이트 대리시험으로 쓰디쓴 대가를 치른 한 여성 변호사의 대답으로 대신한다. 그녀는 “자기 합리화도 안 되겠지만 너무 좌절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1년 전력의 그녀가 모든 수험생에게 전하는 고언으로 들린다.

그 변호사 이전, 훨씬 이전부터 빗나간 교육열과 허영은 있었다. 응시자 부모한테서 돈 받고 암호로 답안을 전달하는 ‘암자(暗字)’라는 조직적 부정행위엔 ‘선수’와 ‘도우미’도 끼었었다. 조선시대 일이지만, 아들이 원서 위조하고 어머니가 주민증에 랩을 씌워 다림질하는 비뚤어진 인정이 돌연히 땅에서 솟지 않았다는 뜻이다.

수능 파동은 그러기에 전파탐지봉으로 땜질할 성질이 못된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 부정은 사회 기강 해이를 먹고 자랐고 딱 한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한탕주의적 토양이 자리했다. 학벌이 신분이 되고 계급 아닌 계급으로 군림할수록 그럴 확률은 비례해서 커진다.

광주 몇 명, 충남 몇 명인지가 본질이 아니다. 사회와 교육현장의 모든 반(反)교육적 그림들을 말끔히 지우는 것이 수능 방지책이며 교육 정상화의 첫 디딤돌이다. 부정한 출세가도보다 심장의 고동소리에 따라 쪽 곧은길을 걷도록, 실패의 두려움보다 놓쳐버린 기회들을 아쉬워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뒤늦게 이를 뼈저리게 깨달았어도 시험 무효와 퇴학에 법의 심판까지 받을 청춘들이 안쓰럽다.

일벌백계를 말하기도 하나 그들은 미처 험한 세상을 모른다. 앞서가고 싶거든 맨 뒷줄에 가서 다소곳이 설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조차 챙기지 못했다. 정의와 양심의 커트라인을 통과하는 법을 누가 자상하게 일러 준 적도 없다. 근대와 탈(脫)근대가 헷갈리는 이 21세기 전반, 2004년 한국의 뒷골목 풍경이 한없이 칙칙해지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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