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감]‘양반’들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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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감]‘양반’들의 분노

  • 승인 2004-12-03 00:00
  • 유영돈 편집부장유영돈 편집부장
▲  유영돈 편집부장
▲ 유영돈 편집부장
예부터 충청도를 일컬어 ‘청풍명월(淸風明月)’ 이라 했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처럼 부드럽고 고매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언행이 점잖고 공손했기 때문이다. 명분과 실리의 양 갈림 길에서도 주저 없이 대의명분을 중시했고, 타인의 실수를 질타하기에 앞서 이해해주려는 넉넉한 마음을 지니어 흔히들 ‘충청도 양반’이라 했던 것이다.

최근 충청도 주민들은 이런 말들이 무색할 정도로 완전히 돌변했다. 그것도 마치 태풍속의 성난 파도와도 같이. 지난 10월 21일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판결이후 500만 주민의 분노는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행정수도 지속 추진’을 요구하는 각종 항의·궐기대회는 물론 사수·서명운동, 심지어는 삭발까지 불사하고 있다. 더욱이 내일은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에서 성난 충청민심의 열망을 뿜어내겠다며 대규모 상경집회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서울이 수도면 지방은 하수도냐’ ‘헌재는 자폭하라’ 등 듣기에도 섬뜩한 어휘까지 이젠 서슴지 않는다.

충절의 고향이며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순박한 충청도민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당초 신행정수도 건설계획은 충청도를 위한 계획이 아니었음을 삼척동자도 안다. 70년대 박정희 정부때는 국방안보 문제와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우려해 일명 ‘백지계획’을 입안했었고, 현 노무현 정부는 국가 균형발전과 더불어 과밀화된 서울의 현안을 해결하고자 계획했던 정책이다.

수도권의 경제 및 인구 집중의 악순환 등 당면 국가문제를 행정수도 건설이라는 대안으로 치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신행정수도 건설은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전국이 잘사는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었지, 충청권만의 발전을 추구한 계획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위헌 판결이후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고 있는 연기와 공주주민들을 위한 구체적인 후속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명운을 걸고 추진하겠다던 열린 우리당은 지난 1일 기존 선정입지인 공주와 연기에 행정수도 기능에 버금가는 ‘행정특별시’나 ‘복합형 교육도시’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만 했지, 그 실천 시기는 밝히지 않고 있다. 또 지난 11월말까지 독자적인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공언한 한나라당는 아직까지도 감감 무소식이다. 국회 차원의 신행정수도 무산 대책특위 역시 여야는 3개월이 좋다, 6개월이 좋다 등 활동시한 논쟁으로 가동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간이 없다. 여야 합의 후속대책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지역민들의 금융부채 등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이를 둘러싸고 수도권과 지방 등 지역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관련 국가시책 역시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은 이제 소모적인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하루속히 충청도민은 물론 국민들이 공감, 이해할 수 있는 후속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행정타운, 기업·대학도시 등 충청권 민심 달래기 식의 무늬만 대안인 ‘꼼수’는 결코 안된다. 행정수도 근본 취지인 국토균형발전과 지방 분권 그리고 수도권 과밀화 해소 등 당초 원안을 살린 후속 행정수도 대책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

나아가 정파를 초월한 범국민적 추진 기구를 구성해 범국가적 과제로 다시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잠시 혼돈을 겪은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相生) 하는 지름길이요, 상처받고 찢긴 충청도 주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일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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