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넘게 기다리다가 예약된 날짜에 인터뷰를 하였는데 들어가는 입구에 비자신청을 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삼엄한 확인 절차를 거치고 미국 영사와 인터뷰를 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어른들은 인터뷰 대상자라서 예약확인서를 받아놓았는데 인터뷰가 면제되는 아이들은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고 따로 예약확인서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영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탁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어른들의 비자를 복사, 첨부해서 서면으로 신청하라고 하였다.
급하게 서류를 준비하여 우편 발송하고 아이들의 비자가 발급되기를 기다렸으나 신청 접수를 맡은 여행사가 약속한 날짜를 훨씬 넘겨도 나오지 않았다. 어떤 학부모로부터 아이의 유학비자를 신청하였으나 1년이 넘도록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땐 아예 포기하고픈 생각도 들었다.
제 나라에 가서 여행하고 돈 쓰겠다는데도 이토록 비자 발급을 어렵게 하는 미국이 얄밉기만 했다. 줄어든 일정 때문에 의미가 없어서 미국 여행은 포기했으나 기대에 차 있던 아이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비자가 필요없고 단기간 내에 갔다올 수 있는 태국과 싱가포르를 여행하기로 했다.
태국은 우선 물가가 싸고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었다. 국왕이 통치하고 있고 불교 국가이기 때문에 모든 문화의 코드가 국왕과 불교로 통하고 있었다.
방콕을 떠나 싱가포르 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밟는데 공항 직원들이 유럽인이나 일본, 한국인들한테는 친절한데, 태국이나 다른 개발도상국 사람들한테는 마치 윽박지르듯이 입국 절차를 처리해준다. 그것을 보면서 미국 비자 신청할 때 겪은 씁쓸함을 다시금 느꼈다.
싱가포르는 한 마디로 잘 정돈된 계획도시다. 땅이 좁다보니 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땅으로 파고들어 건물 밑으로 지하철이 다니는 도시. 외국인이 40%를 차지할 정도로 관광 수입이 많다 보니 모든 시스템이 외국 관광객을 편하게 해주는 쪽으로 짜여 있다.
호텔마다 돌아다니며 관광객을 모아오는 버스가 있고 이를 분류하여 다시 동일한 관광지로 싣고 가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처음 온 외국인도 관광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배울 점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인천 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마치고 대전으로 출발할 때가 아침 6시 10분경. 경부선 고속도로로 합류하는 지점인 판교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 8시였다. 새벽이라 1시간도 안 걸릴 거라는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전체 인구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서울과 경기 지역에 몰려서 살다 보니 아침 6시 이전부터 출근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판교 진입로 부분의 정체는 교통 흐름이 좋은 대전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판교 지역을 곧 재개발한다고 하는데, 교통 혼잡은 더 심해지지 않을까?
신행정수도 건설은 결국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을 살리는 일이다. 인구 밀집으로 인하여 교통 혼잡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공해와 자연 파괴로 인하여 서울은 죽어가고 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인구 과밀을 해소하고 균형적인 국토개발을 하려는 것이 신행정수도 건설의 기본 취지이다. 그럼에도 신행수도건설 법률은 위헌 결정을 받았다.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판단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야말로 외국을 돌아보고 온 국토를 걸어다녀 보아야 한다. 책상에 앉아서 머리 속으로만 그려낸 판결은 살아있는 판결이 될 수 없다.
재판관들이야말로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고 있으며, 다른 나라가 어떻게 발전해 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죽어가고 있는 땅의 신음 소리를 듣고 그 땅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때 정말로 양심과 법률에 근거한 판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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