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며칠 전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목소리는 가을의 서글픔을 씻어주기에 충분했다.“예, 선생님 며칠 후에 선생님 댁에 갈 거예요” 한국말이 서툰 아오키상이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반가운 연락이었다. 아오키상은 예전 일본의 나가사끼에서 한일 친선문화협회 초청으로 ‘한과와 인삼요리’전시회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인연을 맺게 된 일본인이다.
일본이란 나라는 정말 멀고도 가까운 나라였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3시간여 가니 일본의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마치 한국의 어느 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문화적인 차이와 상호 믿음의 부재 때문에 선뜻 호감을 갖기가 힘든 나라인 것 같았다.
처음 일본 방송국에서 요리 전시회에 대한 권유를 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으나 그 주제가 우리나라 전통 한과였고 또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인정받는 우리 고려인삼을 가지고 만든 인삼요리였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전시회를 맡았었다. 전시회라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많은 것을 보여주는 자리이다. 특히나 일본에서 열렸기에 난 일본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많이 알리고 싶은 마음에 욕심껏 우리나라의 한과를 준비해 갔었다.
실제로 많은 일본인들이 전시회에 와서 한국 음식문화에 대해 신기해 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오히려 일본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온 자리이기도 하였다. 우선은 일본인들이 타인에게 베풀어주는 따스한 온정과 일에 대한 열정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방인에게는 자신의 집(가정)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던 우리에게 전시회동안 내내 선뜻 숙소로 제공해 주었고 직접 운전을 하면서 다리 역할도 해주었다. 일본식 다다미방과 식생활을 보여주면서 직접 일본의 요리를 만들어 맛보게 해주었고 조금도 불편함이 없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늘 일본에 대해 차가운 나라, 냉정한 나라라고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이 점점 사그라 들기 시작했다. 이번에 오시는 아오키상은 연세가 60세가 넘었는데도 한국어를 배우는데 열심이시다. 말씀하시다가 “제가 한국말 틀린데 없어요?” 라며 애교 있게 물으시기도 한다. 언어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늘 눈앞의 일들에 묻혀 배우는데 선뜻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나에게 큰 자극이 되기도 하였다.
드디어 그녀가 온다. 난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할까? “꼭 한국에 가고 싶어요” 라고 말하던 아오키상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 늦은 가을 누군가를 기다려본다는 일이 새삼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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