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한 수도회 중 청소년 예방교육을 위해 설립된 수도회가 있다.
이 수도회의 정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글귀가 ‘젊다는 이유 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이다.
처음 이 글을 대했을 때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늙었다거나, 어리다는 이유로 보살핌을 받고 사랑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도 젊다는 이유로 사랑받아야한다는 말이 낯설었다.
그러나 요즈음 이 말의 뜻을 실감하고 있다. 젊다는 이유로 이 사회는 젊은이들을 구박(?)하고 있다. 소외되고 가난한 젊은이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들이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들의 환경을 살펴보는 것이다.
설사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젊은이라 할지라도 오직 공부라는 목표 만을 보라고 강요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그들의 양심과 도덕성, 인생관등에 관심을 가질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청소년기를 보낸다.
청소년이 해야 할 것은 오로지 공부 밖에 없다. 그것도 자신이 꿈꾸어 오던 미래가 아닌 출세하기 위한 공부를 강요받고 있다. 대학은 학문 탐구가 아닌 취업학원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청소년들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책과 참고서와 문제집을 벗 삼아 생활하다가 여유가 생기면 컴퓨터 앞에 앉아 컴퓨터를 통해 사회와 교감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은 딱 두 부류이다. 공부를 잘하는 청소년과 그렇지 못한 청소년이다. 교육열은 세계 최고지만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
이제 한 쪽으로 치우친 이 잣대의 눈금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다. 공부를 권장하는 것은 좋지만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한 젊은이의 다른 장점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요즈음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에게 상을 준다. 상의 내용도 참 다양하다. 노래를 잘하는 상, 도형을 예쁘게 그리는 상, 친구를 잘 도와주는 상, 달리기를 잘하는 상…. 정말 바람직한 현상이다. 모두들 한 장의 상장을 받고 기뻐한다. ‘나도 잘하는 것이 있다. 다른 아이들 보다 나은 것이 있다.’는 이 뿌듯함은 아이의 기억 저편에 항상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소외된 젊은이와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우리 아이들은 모두가 사랑받아야할 젊은이들이다.
꼭 무엇을 잘해야, 하다못해 어른들 말이라도 잘 들어야 사랑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젊다는 이유 만으로 사랑받아야하고 아껴주어야 한다.
수능이 끝나고 여러 가지 잡음들이 사회를 흔들어 놓고 있다. 부패한 어른들의 축소판이 되어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지금이라도 청소년들에 대한 시각을 보호해야할 대상이나 소유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중하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
젊은이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말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줄 때 이 땅을 이끌어갈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많아 질 것을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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