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매스컴을 통해 몇 번 방영되었던 이 사건은 시청자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었으며, 어느 누가 보더라도 어미를 잃은 피피가 살 의욕을 잃은 채 스스로 죽음을 택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지난 1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동우 연구원이 ‘자살예방 국가전략을 위한 전문가 대토론회’에서 우리 나라가 하루에 30명이 자살로 숨지고 있으며 960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발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에 덧붙여 연간규모로 보면 자살 사망자가 1만932명, 자살시도자가 35만 명에 달하는데 이는 48분마다 1명이 자살하고 1분30초마다 1명이 자살을 기도하는 셈이라며 특히 20~30대 젊은 층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것이다.
자살이란 죽음을 스스로 부여하는 의지적 행위를 말한다. 자기 스스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타인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실행한다는 의미이다. 이 자살을 크리스트교에서는 단호하게 비난하였고, 철학에서는 다양하게 평가되고 있다. 이때 철학의 작업은 자살에서, 인간적 삶의 의미와 자유가 생애의 긴 드라마 속에서 만나는 점을, 분명하게 구별하게 한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파이돈’편과 ‘법률’편에서 철학자는 자살을 신들의 의지에 반대하는 불경건한 행위로 생각한다고 기술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을 통해 가난이라든지 연애라든지 그 밖의 다른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끊어버린다는 것은 용기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도리어 겁쟁이가 하는 일이라면서 괴로움을 피한다는 것은 게으름뱅이의 짓이며, 자살하는 사람들이 죽음 앞으로 다가서는 동기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괴로움을 피하려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OECD 회원국중 자살사망률 4위, 자살증가율 1위인 우리 나라의 경우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의 주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살론’을 통해 자살을 사회학적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이다. 즉, 사회의 통합이 지나치기 때문에 개인의 관심이나 생명이 과소평가 되는 사회에서 자살현상이 나타나며 반대로 사회의 통합이 약하기 때문에 인격적 자유·책임·독립이 규범으로 여겨지고 사회적 규범이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기능을 상실했을 때 개인간의 결합력이 약한 사람에게 자살현상이 나타난다고 기술하였다. 결국 자살을 사회적 연결이 느슨해지면서 일어나는 무질서한 현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나라, 우리 사회를 이토록 무질서하게 만들어서 자신의 생명조차 경시하는 자살공화국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나, 너가 아닌 우리 모두 심각하게 되짚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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