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렇게 긴 세월이 아닌데도 아파트에 이름을 붙이는 양태는 이렇게 바뀌고 저렇게 변하였다.
초창기의 아파트 이름은 별 게 아니었다. 그저 아파트를 지은 회사의 이름을 따 ‘삼익아파트’나 ‘삼부아파트’ 정도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주공아파트가 여기저기 세워지자 동네 이름을 앞에 넣어 ‘가장아파트’, ‘비래동아파트’, ‘태평아파트’ 따위가 수북히 돋아났다.
그러다 한때 ‘맨션’이 아파트를 대신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빌라’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면서, ‘저택’이나 ‘별장’처럼 호화로운 집이란 의미를 은근히 과시하였다. 그 시기에 어느 아파트 이름은 아예 ‘빌라맨션’이었으니 그 옥호를 붙인 이의 본뜻을 웬만큼은 알 것 같다.
아파트를 분양받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특혜가 시비거리가 되면서 다시 회사명이 아파트 이름에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현대’, ‘삼성’, ‘한양’, ‘신동아’ 등의 명칭과 함께 아파트는 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이름엔 정감이 어려 있지 않아, 마침내 ‘목련’, ‘국화’, ‘진달래’ 같은 꽃이름을 단 아파트가 피어나고, ‘향촌’, ‘전원’, ‘청솔’ 따위의 넉넉한 풍경이 연상되는 아파트가 좋은 자리에 각각 터를 잡았다.
그러면서 고유어로 된 아파트명이 한 시대를 풍미하였는데, ‘둥지’, ‘햇님’, ‘하나로’, ‘나르매’, ‘가람’, ‘한마루’가 번듯하게 올라간 때가 바로 그 시절이었다. 그 뒤 아파트가 시멘트와 철근의 범벅이 아니라 옛 마을과 같은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라는 뜻에서 ‘선비마을’, ‘원앙마을’, ‘열매마을’, ‘신선마을’처럼 ‘마을’을 의도적으로 붙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가 다 외국어 일색이다. ‘파크빌’, ‘리젠시빌’, ‘드림랜드’ 류의 영어가 대종을 이루고, 영어를 줄여서 쓴 ‘자이’와 ‘아이텔’도 보이며, 다른 서양말인 ‘리슈빌’과 ‘네오미아’가 나타나는가 하면, 그것이 뒤섞인 ‘아르누보팰리스’까지 선을 보였으니, 이런 식의 이름 짓기는 앞으로 엄청나게 늘어날 게 틀림없다.
그런 중에서 가리킴 말인 ‘이’와 환경 혹은 생태를 의미하는 단어의 첫 자를 딴 ‘ⓔ 편한 세상’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꿈에 그린’과 ‘푸르지오’를 들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것에서 그나마 우리말지킴이는 위로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