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언기 예산 주재부장 |
조선시대 제4대 세종조에서 영의정을 지낸 고불(古佛) 맹사성은 공(公)과 사(私)를 엄격히 구분하여 사무(私務)로 출행을 할 때는 관용 사인교(四人轎)를 마다하고 산속에서 주웠다는 꺼벙한 검둥소 한 마리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온양이 고향인 그는 고향선산을 오르내릴 때도 늘 검둥소를 타고 다녔는데, 한번은 영의정이 된 뒤 고향선산에 성묘차 길을 떠나 시흥에 이르렀을 때 길을 닦아 청소까지 해 놓고 영의정의 행차를 기다리던 시흥현감으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길 닦아 놓으면 뭐(문둥이)가 먼저 지나간다고, 어이 재수 없네, 여보 늙은이! 이 길은 일인지하(一人之下)에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영상대감의 금의환향 행차길이니 저 멀리 돌아가시오”라는 호된 질책을 받고 다른 길로 돌아서 저녁나절 무렵 늦게 온양에 당도했다고 한다.
참으로 공사의 구분이 분명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고 아량 또한 하해와 같아 소문 그대로 명재상 중의 명재상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일부기관장을 비롯한 간부공무원들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휴일 나들이를 비롯한 교회와 사찰 등 개인적인 일에 운전기사까지 대동하고 관용차를 함부로 운행하고있어 혈세를 낭비하고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10부제운행에 적극 참여하는 예산경찰서장은 직원소유 소형차량으로 행사장을 참석하여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맹사성 같은 명재상은 못 될지언정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기관장이 되어야 하위직 공무원들이 본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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